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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수(手) 뒤에 수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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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4강전 1국 하이라이트>

○·이세돌 9단(한국) ●·황이중 6단(중국)

장면도(215~229)=백△로부터 풍경은 일변한다. 온종일 밀렸던 이세돌 9단이 서서히 반격으로 나오며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뒤바뀐 것이다.

215는 절대의 응수. 216이 살그머니 놓였는데 흑▲ 한 점을 노리는 이 한 수가 황이중 6단에겐 괴기 동물의 촉수처럼 섬뜩하게 다가온다. 한 점은 크다. 이 한 점을 잡으면 백은 잡아놓은 흑 대마에 가일수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선수. 황이중 6단은 눈을 질끈 감고 219로 이었고 곧이어 이세돌 9단의 220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구경꾼들의 눈이 번쩍 떠진다. 끝인가.

220은 중앙 대마의 절단과 좌변 흑의 포획을 맞보고 있다. 가령 ‘참고도’ 흑1로 이으면(또는 A로 응수하면) 백2로 뛰어 좌변이 잡히고 만다. 하나 황이중도 구급약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바로 221이다. 중앙도 연결하면서 좌변도 살리는 묘수. 하지만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22로 흑의 뒤 수를 메우는 수가 B의 몰아떨구기와 중앙 절단을 엿보는 노림수. 수 뒤에 수가 있고 수 위에 수가 있는 형국이다.

223부터 패를 시작하는 황이중은 문득 혼곤한 표정을 짓는다. 벌써 끝낼 수 있는 바둑이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일까. 전심전력을 다하건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어느 순간 독주에 취하고 마는 것이 바둑이던가. 227에 불청하고 228로 조여 붙이자 형세는 공습경보가 울린 듯 급박해졌다. (226·229-패 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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