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분규에 1천5백여명 발만동동-안성규특파원 체첸서 3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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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긴 어디로 갑니까.갈데가 없는데.』 17일 오후 러시아軍의 진입이 조만간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만난 한인 교포 김수남(60)씨는 『갈 곳이 없어 그냥 눌러있겠다』고했다. 그로즈니에서만 41년을 살았다는 김씨는 이미 이 정도 시련에는 이력이 난듯 싶었다.
그로즈니에는 김씨 이외에도 약 3백여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또 체첸과 인근지역 까지를 합하면 교포는 1천5백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민족분규에 시달리며 갈곳을 몰라 방황하는 한인들이 이곳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거의 없는듯했다. 하기야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서조차 체첸에는 한인교포가아예 없다고 말을 했었으니까.
체첸의 「카레이스키(한국인)」들은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길가는 체첸인에게 카레이스키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시장을 찾아가 보라고 한다.
사할린이나 다른 도시에서처럼 체첸에서도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동양인은 틀림없이 카레이스키라고 했다.
그로즈니 중심부에서 얼마 멀지 않은 중앙시장에 갔더니 채소를파는 동양인이 있었다.카레이스키였다.
김철수(35)라는 한인 남자와 부인 김마야(33)씨가 양배추.김치를 팔고 있었다.그 옆 조금 떨어져 張씨 성을 가진 37세의 한인이 러시아인 부인과 함께 채소를 팔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사람을 처음 본다며 신기해 했다.
그로즈니 교외 미추리노에 있는 김씨집을 찾았다.이곳의 한인들은 대부분 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김씨의 집은 전형적인 농촌식가옥이었다.터는 있었지만 집에는 침대이외의 가구는 보이지 않았다. 김씨와 김씨집에서 만난 다른 한인들에 따르면 수개월전까지만 해도 그로즈니에는 정확히 72가구 3백여명의 한인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얼마나 사는지 잘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까지만해도 아르구니에는 1백여가구 4백여명,바마유로체에는 50여가구 2백여명,실레로프스카에는 50여가구 2백여명이 살았고 하스유르트에는 60가구 2백50명정도,마가차레브에는 70여가구 3백여명이 살고 있었다.
또 체첸은 아니지만 러시아군 사령부가 있는 모즈독에는 7백여가구 3천여명에 가까운 한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김수남씨는 이들 한인이 인근 스타브로폴이나 크라스노다르같은 카프카스 지역내 도시에서 행상을 하거나 좌판을 벌여놓고 어렵게생활하고 있다고 했다.그러나 이들중 전쟁을 피해 얼마가 떠났고얼마가 남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더구나 한인들의 조직도 없고 한국과 북한 어느쪽도 이들에게 관심이 없어 최근 사정은 알기 어렵다는게 김씨의 말이다.
김씨는 체첸의 한인들은 교육수준이 낮아 대부분 집단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살지만 생활수준은 중산층이라고 했다.
그는『체첸인과 한인의 관계는 좋은 편』이라며 『하루빨리 혼란이 수습됐으면 좋겠고 잘산다는 한국으로부터의 도움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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