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노선 대전환 노 정부 균형·자주 → MB는 동맹·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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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1일 서울 견지동 안국포럼 사무실에서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동맹.실용 외교의 선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자주 외교와 비교하면 시계추의 이동이 분명했다.

먼저 이 당선자는 당선되자마자 외교 일정을 숨가쁘게 소화했다.

그는 21일 오전 9시35분 개인 사무실인 서울 견지동 안국포럼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와 7분간 통화한 이 당선자는 전화를 끊자마자 찾아온 글리브 이바셴초프 러시아 대사와 오전 9시50부터 10분간 면담했다.

러시아 대사가 나가자 오전 10시16분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와 9분간 전화통화했고, 전화 통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가 들어왔다. 오전 10시30분에 시작된 면담은 10분간 이어졌다.

이에 앞서 이 당선자는 20일 오후 9시45분부터 7분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대사도 차례로 만났다.

이 당선자가 중앙선관위로부터 대통령 당선증을 수령한 게 20일 오전 10시20분쯤이다. 공식 당선자가 된 지 24시간20분 만에 이 당선자는 4강(미.중.일.러) 외교사절을 모두 만나고 미.일 정상과는 직접 전화통화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 5일 뒤인 2002년 12월 24일에나 4강의 주한대사들과 면담을 마친 점을 생각하면 무척 빠른 속도다.

이 당선자의 외교 행보는 속도만큼이나 내용 면에서도 과감했다. 한.미 동맹 복원과 실용 중시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부시 미 대통령에게 "새로운 정부에선 한.미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게 나의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려워 살려야 한다"며 "그 다음은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실리 추구의 이 당선자 외교 태도는 21일에도 반복됐다. 그는 닝푸쿠이 대사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축하 편지를 건네자 "중국은 한국과 수출입 면에서 가장 (거래 규모가) 큰 나라"라며 "그런 점에서 한.중 관계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이 당선자는 러시아에서 (한국과) 경제협력의 시작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즉각 "동부 시베리아 개발을 (한국과 러시아가) 함께해 나가면 양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필요한 인력은 북한 인력을 쓸 수 있다"고 경제협력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때는 북핵 문제가 급박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감안해도 노무현 당선자 때와는 분위기가 무척 달랐다. 당시 노 당선자는 4강 대사들의 축하 인사에 답례한 뒤 "북핵 해결을 위해 공조하자"는 비교적 평이한 대화를 주로 나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당선자는 다국적 기업의 CEO나 CEO형 국가지도자들과 친분이 두텁다. 셰이크 무하마드 두바이 지도자가 대표적인 예다. 한나라당 박진 국제위원장은 "이 당선자는 외교적 선택과 집중에 능하다"며 "경제분야 인맥을 기초로 주요국 정상과의 교분을 어렵지 않게 확산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외교관은?=이 당선자의 외교관은 ▶동맹 복원 ▶4강 외교 ▶아시아 중시의 세 가지 코드로 설명된다. 20~21일 보여준 적극적 외교 행보가 이들 코드에 따른 것이다.

이 당선자의 이런 외교관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이들은 현인택.남성욱 고려대 교수, 김우상.이정민 연세대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남주홍 경기대 교수 등이다. 모두 한.미 동맹을 안보기축으로 삼되 국익도 동시에 추구하자는 '중도보수파' 학자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문정인 연세대 교수, 서동만 상지대 교수,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원 등 '자주파'의 의견을 자주 들었다.

남궁욱.이종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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