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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실용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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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의 어원은 행동·실행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프라그마(pragma)’다. 그만큼 행동과 실천을 중시하는 철학이다. 유용성이 진리 판단의 기준이다. 지식도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이기 위한 도구로 본다.

실용주의는 현대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미국이 내놓은 거의 유일한 철학 브랜드이고, 미국적 가치·프런티어 정신의 요체이기도 하다.

실용주의의 뿌리로는 19세기 말 공리주의가 꼽힌다. 당시 유럽 자본주의는 극심한 빈부격차, 노동운동에 직면했다. 부르주아에겐 사회주의에 끌리는 노동자 계층에 맞서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운 공리주의가 그 대안이 됐다.

실용주의는 이런 공리주의의 미국적 전개로 불린다. 당시 미국 역시 남북전쟁의 후유증으로 통합을 위한 지적 치유가 필요했다. 시기적으로도 독점 자본주의의 문턱에 접어들고 있었다.

187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는 지식인 살롱 ‘메타피지컬(형이상학) 클럽’이 문을 열었다. 기호학자 찰스 S 퍼스, 법학자 올리버 웬들 홈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교육철학자 존 듀이 등 4명이 핵심 멤버였다. 클럽은 9개월 만에 문을 닫았지만 책 『메타피지컬 클럽』은 여기서 실용주의와 오늘의 미국이 탄생했다고 썼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상이 ‘저 멀리’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포크나 나이프, 마이크로 칩처럼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한 도구라고 믿은 점”이다. 이들은 “사상의 생존은 그것의 불변성이 아니라 적응성에 달려 있다”며 “실용주의란 생각하는 방식에 관한 설명” “사람들의 신념이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이라기보다 태도로서의 실용주의다.

철학자 탁석산은 한 강연에서 “민생을 우선시하는 정치적 용어로 오해받고 있지만 실용주의야말로 지난 1세기 동안 한국인이 택해 온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며 그때그때 어떤 것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가를 선택하는 사상적 틀로 실용주의를 채택해, 시대에 필요한 과제를 해결해 왔다”는 설명이다.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실용의 정부’를 내세우며 ‘실용’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관심은 그저 정치적 차별화를 노린 수사로서의 실용주의가 아니다. 실용의 내용을 실용적으로 잘 채워, 실용주의의 실용성을 입증하는 일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