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신 외치며 勝戰기원-안성규특파원 그로즈니서 2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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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로즈니=安成奎특파원]긴장이 끊어질듯 팽팽한 가운데 그로즈니에는 눈발이 날렸다.
카프카스 산맥을 휘몰아쳐오는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에 몸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이런 추위에도 불구하고 그로즈니市 중심부 두다예프 대로에는 2천명이 넘어 보이는 체첸병사들이 질러대는 함성과 열기로 가득차 뜨거웠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17일 밤까지로 최후통첩 시한을 연기했지만 그로즈니의 긴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버스들은 지원병을 부지런히 태워나르고 있고 멀리서 들리는 포성과 총소리에 지쳐 그로즈니를 빠져나가는 피난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러시아군과 체첸군이 가장 가깝게 대치하고 있는 그로즈니서쪽 페르노바 예프스코예.
러시아군의 침입에 대비한 각종 장애물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가운데 지원병을 태운 버스가 속속 도착한다.
탱크 포탄 한발이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녹슨 유조탱크,시멘트 구조물,철골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10여개의 장애물이 참호에뒤엉켜 있었다.
이곳으로부터 3.5㎞ 앞에는 러시아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채 부지런히 보병들을 태워날랐다.
후세인(48)이라고 밝힌 체첸병사는 『저렇게 막강해보이는 러시아군을 당해내겠느냐』고 했더니 가슴을 두드리며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다.
우물라토프(34)라는 다른 병사는 『우리에게는 용기가 있지만그들(러시아군)에게는 용기가 없다.우리는 승리한다』고 열을 올렸다. 16일 오후5시30분.체첸 의용군과 후방지원부대가 몰려있는 블라디 카프카스.
5백명 정도 됨직한 체첸인들이 『알라 신』을 외치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카프카스 지역의 회교도들이 전투를 앞두고 거행하는 전통의식인「이클」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결사항전 의식을 고취하고 전쟁에서의 사망이 곧 남자의 명예임을 다짐하는 특유의 종교의식인 이클은 이날 밤 늦게까지 진행되었다. 16일 밤10시.
러시아군이 체첸 게릴라들이 끊어놓은 교량에 부교를 설치하고 병사들을 태워나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러시아군 트럭들은 그로즈니를 옥죄기 위해서인지 도시 가까운 곳에 병사들을 토해놓고 있었고 장갑차와 탱크들도 어디론가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다.러시아군의 이동에 맞서 체첸인들도 바쁘게움직였다.
옐친의 최후통첩 연기에 호응해 두다예프도 러시아군에 대한 사격중지를 하달했지만 긴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관찰되고 있는 징후는 러시아군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뿐이었다.
16일 밤12시.
총성이 간간이 들리고 있는 가운데 그로즈니는 어둠 속에서 더욱 더 흉물스런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그리고 시민들은 그 속에서 초조하게 최후통첩시간인 17일 자정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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