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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중국에 ‘SO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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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월가를 대표하는 미국 투자은행이 중국 정부에 “도와 달라”며 손을 벌리는 일이 벌어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엄청난 적자를 낸 모건스탠리가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부(國富)펀드에 긴급구조를 요청한 것이다.

중국투자공사(CIC)는 19일 5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만큼의 모건스탠리 전환사채(CB)를 사 주기로 한 것이다. 이 CB의 금리는 연 9%에 이른다. 2012년 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CIC는 모건스탠리 주식 9.9%를 보유하게 된다.

모건스탠리는 이날 4분기(9~11월)에 36억10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동기에는 22억1000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이런 손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이 부실화하면서 자산가치가 94억 달러나 줄었기 때문이다. 존 맥 모건스탠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4분기 실적은 매우 실망스럽다”며 “책임을 절감하는 만큼 올해 보너스는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중국이 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큰손으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의 외환보유액은 현재 1조4000억 달러(약 1320조원)를 웃돈다. 이런 돈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 금융기관의 구세주 역할까지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스티븐 그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CIC의 모건스탠리 주식 투자는 깜짝 놀랄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지구촌 금융시장의 본산인 월가의 투자은행도 일부나마 사들일 정도가 된 것이라는 얘기다.

모건스탠리뿐만이 아니다. 지금 월가의 주요 은행들은 주택금융 부실로 경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UBS와 씨티그룹도 최근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으로부터 각각 100억 달러, 75억 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모면했다.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는 10월 중국 최대 증권사인 중신증권에 손을 벌렸다. 그래서 10억 달러를 수혈받는 대신 주식 6%를 내줬다. 세계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지난주 스탠리 오닐 CEO를 해고하고 후임으로 존 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 CEO를 선임했다.

CIC는 올 6월 10억 달러를 들여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지분 9.3%를 매입했다. 중국공상은행은 10월 아프리카 최대 은행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탠더드은행 지분 20%를 56억6000만 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이 같은 공격적 투자로 올해 중국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이 처음으로 외국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를 앞질렀다. 미 금융정보 업체인 톰슨 파이낸셜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해외 기업 M&A는 총 292억 달러로, 외국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 금액(215억 달러)을 크게 웃돌았다.

 
정재홍 기자
 

◆중국투자공사(CIC)=중국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설립한 펀드다. 현재 운용 규모는 2000억 달러. 국가 소유 펀드라 해서 국부펀드(Sovereign Fund)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투자공사(KIC)라 하는데 투자 규모가 200억 달러다. 투자기업의 경영권 장악보다는 높은 수익률에 목적을 두고 있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60% 이상을 미국 재무부 채권에 투자하는데 앞으로 CIC 운용액을 늘려 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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