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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학교' 등록거부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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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3동 충훈고등학교. 신설 공립학교로 개교(3월 2일)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교문에서 현관 진입로까지 아스콘 포장공사가 한창이다. 운동장에는 대형트럭과 중장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업 중이다.

교실이 들어서는 교육동 건물(5층) 3.4.5층은 칠, 바닥 타일, 화장실 칸막이 공사 등의 마무리 작업이 어수선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공정률은 80% 수준. 공사 관계자는 "아무리 서둘러도 공사가 끝나려면 4월 말은 돼야 한다. 신입생들이 입학해도 2개월가량은 계속 공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학교 주변환경도 열악하다. 학교 정문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 대형버스 차고지가 있고 학교 뒤편에선 고속철 광명역사로 이어지는 충훈터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소음으로 인한 수업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학교가 학생들의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문제다. 신입생 5백25명 중 절반이 넘는 3백10명의 주소지가 학교가 있는 만안구가 아닌 동안구(區)다. 이들은 등.하교 때 두 차례 이상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학으로 하루 2시간 가깝게 허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지난 6일 자녀의 충훈고교 배정통지서를 받은 학부모들은 학교 재배정 또는 입학 후 전학 허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학교가 완공도 되지 않아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데다 주변엔 혐오시설이 가득하다. 이런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학부모들은 학교 배정 다음날인 7일 '충훈고 개교 반대 학부모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등록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7일이 납부 시한이었지만 2백1명의 학생이 학교 측에 등록금(43만2천원)을 내지 않고 대책위원회 통장에 넣어 두고 있다.

또한 학부모와 예비학생 4백여명은 학생 예비소집일인 18일 학사 일정을 거부하고 안양시청 강당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연 데 이어 18.19일 이틀 동안 장안구 조원동 경기도교육청으로 장소를 옮겨 철야 농성을 벌였다.

학부모 황연석(49)씨는 "등교에 한 시간이나 걸리는 것도 걱정인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한밤중에 온풍기를 틀어놓고 시멘트 양생 작업을 하고 있는 광경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대책위원회는 19일 충훈고 배정처분 취소와 배정 집행정지를 요구하는 '행정심판 청구서'를 경기도교육청에 제출하는 한편 수원지법에도 학교 배정취소 등을 요구하는 '행정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학생.학부모 명의로 제출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정상적인 개교를 위해서는 2002년 11월에 착공했어야 했다. 하지만 학교 부지가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안양시청 공사허가를 받는 데 한달 이상 걸렸다. 겨울에 공사를 할 수 없어 부득이 지난해 3월 공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완공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체 36개 학급 중 올해 신입생들이 수업을 하는 1.2층 15개 학급은 공사를 모두 마쳐 정상적인 개교와 수업이 가능하다"며 "형평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재배정 등 원칙에서 벗어난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경기도교육청은 미등록 학생들을 위해 지난 13일 신입생 등록 마감일을 17일로 1차 연기한 데 이어 이날 또다시 20일로 최종 연기했다.

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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