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이제는실천이다>7.말로만 풀린 기업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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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화요? 관(官)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 해도됩니다.』 외국기업들을 주고객으로 삼고 있는 변호사 C씨는 세계화를 외치고 있는 정부 자체가 가장 먼저 세계화돼야 할 대상이라고 서슴없이 지적한다.
기업 활동을 하면서 한 번이라도 공무원들을 상대해 본 사람이라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모 대기업의 투자관리담당 부장 K씨는 최근 국내와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공장을 세우면서 우리의 세계화 수준을 절감했던 사람이다.
『세계화는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를 피해 빨리 해외로 뜨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세계화는 단순한「냉소적인 정의」가 아니라 우리의「냉혹한 현실」이다.
기업 환경을 세계화시켜 놓지않는한 앞으로 국내에 남아 있을 웬만한 기업이 과연 몇개나 되겠는가 하는 심각한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기 때문이다.
C씨의 기업은 최근 충남지역에 공장을 차리면서 무려 1백개 이상의 인허가 서류를 들고 행정창구를 돌아다녀야 했다.서류에 찍힌 도장만 1천개가 넘었다.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채 진입로등 필요한 인프라를 스스로 만들었다.공장을 짓고 나니 이번에는 지방자치단체가『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기부금을 내라』고 손을 벌렸다.
반면 낯선 이국땅인 영국에서는 사정이 판이하게 다르게 돌아갔다.인허가 사항에 대해서는 공무원들이 현장으로 직접 달려와 즉석에서 처리해줬다.중앙정부는 공장진입로를 닦아주었고 기술을 이전할 경우 투자비의 20%를 현금으로 지불해주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주민을 일정수 채용하는 조건으로 총투자비의31%를 공짜로 지원하는가 하면 현지 주재원 가족들을 위해 개방대학의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해주는 세심한 배려를 해줬다.이렇듯공장 하나 짓는데 거치는 절차에서도 세계화의 수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南潤昊기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기업을 대하는 자세에도큰 차이가 있다.
선진국들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기업을 유치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아직도「우리 기업이냐 외국기업이냐」,즉「아군이냐 적군이냐」를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식이다.
예컨대 상공자원부는 업종별 간담회를 열 때 한국IBM이나 삼성휴렛팩커드등 외국투자업체를 절대 부르지 않는다.
우리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용과 소득을 높이고 있는데도 국적상「우리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나 외국 기업에 대해 폐쇄적이라는일본에서도 통산성이 정책토론회를 할 때면 일본IBM이나 제록스를 꼭 불러 의견을 듣는다.
위아래 정부 조직 사이에 격차가 큰 것도 세계화의 걸림돌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부서와 집행하는 부서,그리고 고위관리와 하급관리들 사이에「수준」이 달라 기업들이 실질적인 규제완화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정책과 구호는 세계화한다고 야단이지만 현장에서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재무.상공자원.건설부,지방자치단체 모두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서로 미루는 바람에 아직도 재산을 장부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책결정을 맡은 고위관리와 일선에서 움직이는 실무자들 사이에 의식 차이가 커 효과적인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선 관리들은 외국기업에 규제를 가해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일종의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앨런 트위스트 ICI코리아 회장).기업의 해외진출이 세계화의 중요한 척도라면 아직 세계화로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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