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9."아라비아의 로렌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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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인간의 경지를 넘어 신이 되기 위해 아토스를 찾아갔듯이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도 영웅에서 그치지 않고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갔다.시인 카잔차키스의 조국 크레타가 터키와 싸웠듯이 군인이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베두인족을 이끌고 터키군과 직접 싸웠다.
사라진 영광과 옛땅을 찾으려는 꿈은 있어도 현대 무기를 이해하지 못해 칼을 들고 비행기에 맞서 싸우려는 아랍인들을 규합하고,바람부는 모래 언덕 밑에 웅크리고 앉아 밤새도록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아카바! 아카바를 뒤에서 친다」는 전 술을 짜낸 로렌스 중위,『나는 지옥이 뭔지 몰라』라고 외치며 사막의 횡단을 시작하면서「엘 로렌스 신화」가 창조된다.
그는『정해진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운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족장의 하얀 옷자락을 나부끼면서 환상에 젖고,낙오된가심에게 생명을 주었다가 다시 거두어 역시 운명의 주인 노릇을한다. 『불가능한 일도 나에겐 가능해』라면서 아카바를 친 다음태평양에 다다른 코르테스처럼 환희하며 바다를 품에 안고,폭파한열차 위에서 나비춤을 추던 그는「살인을 너무 많이한데 대해 회의를 느끼지 않고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회의하기 시 작한다.또「황금 총알만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과대망상증에 빠지고,살육의 전쟁터에서 광란의 희열을 누린다.
그러나 군인은 소모품.그는 결국 정치의 꼭두각시가 되어 돈에팔린 살인자들을 이끌고『포로는 필요없으니 모두 죽여라』고 고함치며 피맛에 미친 살인마가 되어 다마스커스로 진격한다.
카이사르를 비롯한 모든 전쟁의 영웅은 결국 살인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파킨슨의 말이 절실하던 장면이었다.전쟁의 승리는 결국 살육이요,영웅은 개인이지만 정치는 조직이어서 영웅은 권력에 이용당한다는 교훈도 남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는 신비한 인물 로렌스의 자서전『지혜의 일곱 기둥』을 원작으로 1962년 영국에서 제작,7개의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는데 데이비드린 감독과 음악의 모리스 자르는 물론 촬영상을 받은 프레디 영이 카메라로 잡은 사막 풍경의 시각적 공간이 압권이었다.
살빛의 지평선,붉게 젖은 하늘,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먼지바람,푸른 달빛,은빛 사막,납빛 사막,황금빛 사막,모래의 스펙트럼뿐이요 생명이 없는 풍경은 아름다움의 경지를 넘는다.
노란 지평선에서 처음 오마 샤리프가 등장하는 장면은 린감독이자랑삼는 3분간의 기나긴 서스펜스다.
이 영화는 잘려나간 부분들을 다시 삽입하고 재편집해 89년 2백16분짜리로 미국에서 새로 선보인 일이 있다.스탠리 크레이머의『매드 매드 대소동』도 같은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필름이 보관되어 있지 않아 실패했다니,만사불여 튼튼인가보 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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