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2002년의 내가 아니다 … 반드시 대통령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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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17일 강원도 원주시 중앙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이회창 무소속 후보. 그는 지금껏 승리를 주장해 왔다. 경천동지할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지난달 7일 출마 선언을 한 뒤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여론조사에서 2, 3위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으로 나와도 그의 확신은 여전했다.

선거를 사흘 앞둔 16일부터 이틀간 그를 따라붙었다.

세 번째 대권 도전의 마지막 고개에 선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16일 오전 그의 표정은 밝았다. '이명박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였다. 그는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긴급회의→오후 2시 긴급기자회견→오후 8시 TV토론 등 강행군 속에서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TV토론을 끝낸 직후인 오후 10시20분 이 후보는 서울 서빙고동 자택 인근의 이촌지구대를 찾았다.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였지만 토론회 결과가 만족스러운지 표정이 밝았다. 그는 지구대 경찰을 위로하며 "대통령 될 테니까…" "대통령 되면…"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는 "우리가 평소에 신세를 많이 진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니까 원치 않지만 경찰 경호도 받고 본의 아니게 괴롭히고 신세 많이 진다. 이제 사흘만 더 신세 지자"란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 동향에 관심

17일 오전 8시20분. 서울 서빙고동 자택 앞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오랜만의 양복 차림이 오히려 낯설었다. 주로 점퍼 차림이었다. 측근들은 "마지막 TV후보연설 녹화 일정 때문에 입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틀 후면 선거인데 각오는.

"…."

오전 9시 KBS의 한 스튜디오에서 후보연설 녹화에 들어갔다.

그는 "이회창을 찍으면 이회창이 된다. 이회창은 정권교체의 유일한 선택이다. 민심의 대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요지로 말했다.

그는 녹화 도중 간간이 스튜디오 구석으로 찾아들곤 했다. 긴밀한 휴대전화 통화 때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주변 의원들 동향은" "경선 때 전략이…"란 토막토막만 들려올 뿐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가 박근혜 전 대표와 그 주변의 동향에 신경 쓰고 있다는 걸 판단할 수 있었다. 통화 직후 그의 표정은 다소 딱딱해졌다.

◆"이명박 시대는 노무현 시대와 다를 바 없어"

그는 오전 11시40분 춘천 중앙로에 마련된 유세 단상에 올라섰다. 그러곤 BBK 동영상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와 이회창 대통령 시대를 비교해 봐라. 어떤 세상이 바라는 세상인가.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후보가 정권을 잡는다면 지난날 노무현 시대와 다를 바 없다. 국민이 크게 크게 고생할 것이다. 돈이 없어 이민 못 가는 사람이 바보고, 이회창 찍어 이민 못 가는 사람이 더 바보, 노무현 찍고 이민 못 가는 사람이 진짜 바보란 말이 있다. 12월 19일 또 잘못해서 이민갈 거냐."

이 후보는 이어 "(BBK 동영상 사건 이후) 여론조사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실망했다"며 "정권교체를 한나라당으로 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이 나와 정말 가슴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도 했다.

그의 표정이 전날에 비해 어두워진 게 BBK 동영상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는 여론조사 때문일까. 이채관 수행팀장은 "16일 밤 여론조사 소식을 보고드렸다"고 전했다.

◆햄버거와 콜라로 점심 때워

오후 1시 춘천에서 원주로 넘어가는 유세 차량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햄버거와 콜라로 점심을 때웠다.

-승리를 자신한다고 했다. 예상 득표율을 말해달라.

"자신한다. 결과는… 나와봐야 안다."

-유세를 하면서 느낀 건.

"못사는 사람들, 잘살게 해달라는 거다. 손을 붙잡고 잘살게 해달라고, 허리를 펴고 살게 해달라고 하더라."

-정권교체를 할 유일한 후보라고 말했는데.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후보는 진정 나 혼자뿐이다. 정직과 신뢰로 리더십을 쌓고, 안정된 바탕 위에서 세계 속으로 도약하는 한국의 미래를 열어야 하는데 후보들 중에서 그 일을 이룰 유일한 후보는 나다."

◆"2002년의 내가 아니다"

-2002년 때보다 더 나은 대통령감이라고 여기나.

"허허. 밑에서 시작하면서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의 마음과 함께 가는 걸 절실히 느꼈다.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미래를 여는 시각과 통찰 면에서 한국이란 좁은 땅덩이를 떠난 국가대개조 비전을 제시한다는 게 2002년 달라진 점이다."

-이명박 후보가 특검을 수용했다.

"너무 시끄러우니까 결정한 거지, 자기가 조사받는 게 좋아서는 아닐 거다. 만일에 그 양반(이명박 후보)이 당선돼 조사받으러 불려 다니는 사태가 온다면 차기 정권은 어디서 안정을 찾을 수 있겠는가."

-대법관을 지낸 경험으로 보면 이명박 후보의 혐의 사실은 어떻다고 보나.

"문제가 많은 게 참….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기가…. 엄청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정동영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공동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내용을 먼저 알아보겠다."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이 바뀔 것이라고 보나.

"하여튼 박 전 대표의 입장이 그러니…."

◆"박근혜와 나라의 미래 열기를 희망한다"

인터뷰 이후 그는 여기저기 다시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의견을 구하는 모습이었다. 부평 유세를 취소하고 대신 긴급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오후 4시40분 인천 남동구 구월3동 지역사무소에서였다.

그는 훨씬 강한 톤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명박 후보를 향해선 "부패한 지도자는 국민에게 재앙"이라며 "국민을 상대로 대담한 거짓말 행각을 벌인 사람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겨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정동영 후보를 겨냥한 듯 "여당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할 일만 남았다. 야당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에 대한 구애는 노골적이었다. 그는 "박 전 대표와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와 반부패 연대할 생각은.

"그런 계획은 없다."

◆"정동영 공동정부 제안은 합당하지 않아"

-정 후보가 공동정부를 제안했는데.

"정 후보는 현 여권의 후보로서, 저에 대해 공동정부를 구성하자는 건 매우 합당하지 않은 제안이다."

그는 오후 7시 단암빌딩 앞에서 열리는 '이회창으로 정권교체 궐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떠났다. 그의 시선은 '대선 승리'에 못 박혀 있었다.

글=고정애.정강현 기자 ,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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