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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사관저 한옥으로 짓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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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전통 주거 양식인 한옥의 아름다움과 선조의 건축에 대한 지혜를 재발견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정동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는 한옥으로 지어졌는데, 덕수궁 등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 우아한 한국의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미국 대사관을 신축할 당시 백악관과 같은 미국식 건물을 건축했을 법도 한데, 당시 하비브 대사는 전통 한옥식 관저를 건축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담았다.

재외공관의 대사관저는 주재국 인사들을 초청해 연회 등 다양한 외교행사를 하는 장소다. 이 때문에 각국의 대사관저는 각국의 전통가구와 예술품으로 꾸며져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품격을 보이는 외교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재외공관 가운데 격을 갖춘 한옥 관저가 한 곳도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미국 대사관 한옥 관저는 우리에게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가 건축한 지 30년 된 주일대사관 청사와 관저를 재건축하기로 하고 준비에 착수했다. 이 관저는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면서 한옥으로 지어야 한다.

건축양식은 한 민족의 고유 문화가 가장 잘 나타나는 것으로, 자연환경과의 교감 속에 만들어진 창조물이다. 한옥 역시 우리나라와 자연환경이 비슷한 일본에 지어야 그 멋과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를 통해 한반도에 많은 일본 문화를 심어 놓았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많은 일본인이 한류(韓流)를 통해 우리 대중문화에 열광하고 있고, 일본 문화의 뿌리가 한반도로부터 유래되었음을 알기 시작했다. 이런 시점에 도쿄의 한복판에 새롭게 신축할 관저를 멋진 한옥으로 건축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건축가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설계를 하고, 우리 장인들이 우리의 나무·돌·기와로 정성스럽게 지은 한옥 주일 대사관저는 앞으로 오랜 세월 일본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임성준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