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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세계화를 위한 정치연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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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세계 경제」의 등장을 선언한 것은 1986년이었다.이 세계경제가 진정으로「글로벌(지구촌)化」를 이룩한 것은「냉전의 종식」으로 舊사회주의 체제의 시장경제화가 시작된 1989년이다.1995 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으로 경제의 무한경쟁을 제도화한「국경없는 세계」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이러한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에 대처하기위해 지난달 시드니에서「세계화 장기구상」을 발표한데 이어 이의실행적 조치로 지난 3일에는 정부조직의 대대적인 개편작업에 착수했다.金대통령의 세계화 구상과 정부조직 개편 조치는 성수대교붕괴 이후 계속되는 대형사고,정치적 대립속에서 방향성과 목표를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던 우리사회를 집권초기의 개혁 열기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매우 시의 적절한 전환적 조치로 이해될 수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지난 2년동안 비전 부재(不在)의 개혁작업이 표적 사정(司正)으로 끝난 감이 없지 않았듯 이번의 세계화 구상과 정부조직개편 조치가 비전없는 국가적 모험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는 이번의 전환적 구상과 조치가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의 정치.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시대인식의 산물인지, 상황 대응적인 이른바 국면전환용 전략인지를 가늠하 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金정권은 지난 2년간 「개혁」을 외치면서도 개혁에 대한 비전제시보다는 깜짝쇼적인 정면돌파 전략에 의존하다가 개혁에대한 냉소주의를 낳았던 면이 있는게 사실이다.마찬가지로 세계화에 대한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복지부동(伏地不動)하던 공직사회를 더욱 불안과 혼돈의 와중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이렇게 되면 공직사회의 불안과 국민의 정부능력에 대한 의문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정치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나타났듯이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정치조류가 이제 역류(逆流)가 되어 대통령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황인식을 소홀히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개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역사 적 전환을모색해야 하는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이 된다.
그동안 우리의 개혁과 전진에 대한 초기의 자신감은 퇴색했다.
그러나 냉소주의와 패배감에서 계속 방황할 수는 없다.세계화 선언과 정부조직 개편을 전기로 삼아 새로운 출발을 다시 논의해야한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화 구상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의 기본이 우선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첫째는 무엇보다도 세계화의 철학과 비전을 정립하는 일이다.지금 논의되고 있는 세계화의 핵심은 온통 국가경쟁력 강화에 쏠려 있 다.
그러나 세계화가 경제적 차원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그것은 지난 30년간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온부국강병(富國强兵)멘탈리티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국제사회는 이와같은 단선적이고 자국중심적인 국가이익의 추구를 허용하지 않는다.경제분야를 중심으로 한 상호의존의 심화와 매스미디어의 발달에 의한 정보화의 세계는 부국강병적 국가이익의 추구를 넘어 여타 국가와의 공생(共生)적 번영속에서의 자립적 국가이익을 허용할 뿐이다.
우리는 동서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규제.통제 위주의 정부조직과중상주의(重商主義)적 경제정책을 통하여 성공적인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와같은 성공의 뒤안길에는 30여년에 걸친 정치적 권위주의와 국민의 희생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그러나 세계화를 통한 국가발전 전략은 이제 국경을 초월한 지역협력과 민주주의의 지구화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또 세계화를 위한 정부조직 개편은 한국사회의 지방분권형(分權型)체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 지방화의 가치관을 전제로 해야 한다.요컨대 세계화의 비전은 19세기적 발상에서 21세기적 발상으로의비약을 요구하고 있다.또 세계화의 구상이 훌륭한 비전으로 이론화된다 할지라도 비전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정치가 이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국민의 신뢰 와 지지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개혁추진 과정에서도 그랬듯이 정부의 세계화 추진 스타일은 아직도 비공개적이고 충격요법적이다.
그러한 스타일로부터의 탈피가 시급하다.
***세계정치조류 따라야 세계화 구상에 걸맞는「새로운 시작」의 보다 열린 정치를 위해 집권세력은 하루빨리「선거연합」에서 해방되어 진정한「통치연합」을 형성해야 한다.아마도 이를 위해서는 탈냉전의 세계정치 조류에 부응하는 국내정치 조류의 육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부국강병의 정치연합」으로부터「세계화의 정치연합」으로의 비약을 의미한다.
정치의 실종속에선 세계화가 국민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서울大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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