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수천 마디 말보다 정치적인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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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08면

1670년 여름 루이 14세가 진두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라인강을 건너 네덜란드 남부를 점령했다. 루이 14세는 8월 14일 파리 노트르담성당에서 ‘테데움(하느님 당신을 찬양합니다)’을 연주할 것을 명했다. 이튿날 네덜란드에서 빼앗은 깃발을 앞세우고 시가 행진이 펼쳐졌다. 기마악대의 팡파르에 맞춰 행진하던 근위대 기수단이 깃발을 파리 대주교에게 바치자 장엄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테데움’이 끝나자 바스티유에서 축포가 발사됐다. ‘테데움’은 종교음악이지만 사실상 루이 14세의 위용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음악은 예로부터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 행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쉽게 내용이 파악되는 미술이나 문학과 달리 음악은 말(言)이 필요 없는 청각예술이라는 이유로 ‘비정치적인 예술’로 보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음악은 강력하고도 교묘한 ‘선동’의 수단이 된다.

아무런 제목도 가사도 없이 음악은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 “수천 마디의 말보다 음악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소 지론이다. 중국은 문화혁명 당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더 빠른 속도로 확산하기 위해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금지하는 대신 중국 인민에게 몇 곡의 혁명가요만 반복적으로 들려줬다.

르네상스 시대 전쟁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강대국의 문화가 약소국의 문화를 침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화 전쟁’ ‘문화 식민지’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전시에 음악은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됐고, 평시에는 의식 행사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었다. 강대국은 막대한 부(富)를 기반으로 최고의 음악가들을 영입했고, 이들이 유럽 음악계를 지배했다.

공식적인 외교 관계 수립이 있기 전에 사전 정지 작업으로서 문화 교류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정상 외교에 앞서 양국의 음악단체가 오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음악단체의 교환 방문은 선린 우호는 물론 국력 과시를 위한 방법이다. 말하자면 ‘소프트 파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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