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뉴 트렌드 … 가전제품, 수채화를 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65년 역사의 한국도자기가 삼성 지펠 냉장고에 튤립 무늬를 입혔다.

 삼성전자는 최근 출시한 2008년형 지펠 냉장고 표면에 한국도자기가 만든 전사지를 이용해 무늬를 새겨 넣었다고 14일 밝혔다. 10월 출시된 하우젠 김치냉장고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던 튤립 무늬다. 냉장고 표면에 무늬를 바로 그려 넣은 제품은 이미 2년 전부터 시중에 나왔다. 하지만 전사지를 사용해 수채화 같은 느낌을 표현한 제품은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먼저 손 내밀어=삼성전자 생활가전디자인그룹의 채경호 부장이 한국도자기를 방문한 것은 올 5월. 그는 지펠 냉장고의 새 디자인을 놓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기존의 직접 인쇄 방식으론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의 종류가 4~5가지밖에 없어 답답했던 것. 또 농도나 명암의 미세한 차이도 조절할 수 없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은은한 무늬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채 부장은 “‘도자기처럼 은은한 꽃무늬를 그려 넣을 수 없을까’ 고민하다 도자기의 전사지를 대안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삼성의 제안을 받은 한국도자기 김영신(45) 사장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올해 가전제품과 생활용품용 전사지를 신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5개월의 시행착오 끝에 은은한 분홍 튤립이 번지듯이 새겨진 수채화 느낌의 패턴을 개발했다.

 ◆12년 투자 열매 맺다=한국도자기가 본격적으로 전사 기술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1995년 전사지 색분해 연구를 전담하는 연구소를 세웠다. 도자기 만드는 기술이 엇비슷하게 고급화되면서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는 ‘누가 더 선명한 그림을 그려 넣느냐’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85억원짜리 인쇄 기계를 들여오고 영국·독일·일본에서 기술자를 초빙했다. 이 회사는 매년 수익의 30% 이상을 전사 기술에 투자했다. 전사 기술로는 세계 3대 회사로 꼽힌다.

 이 회사는 투자의 열매를 2000년부터 맛보기 시작했다. 로열 코펜하겐, 로열 달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자기 회사들이 납품을 요청하기 시작한 것. 로열 코펜하겐은 올해 성탄절용 신제품 전량을 한국도자기의 전사지로 만들었을 정도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와의 디자인 협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전사 기술이 도자기를 넘어 가전·생활용품 등에서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을지를 시험할 기회라는 것이다. 그는 “가전용품과 주방용품의 디자인이 비슷하기를 원하는 주부가 많아 앞으로 가전업체와 공동 작업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사(轉寫)=종이 위의 그림을 도자기·유리 등의 표면에 옮기는 인쇄 방식. 매끄러운 표면에 접착용 니스를 바르고 그림이 그려진 전사지를 붙인 뒤 벗겨내면 그림만 남고 종이는 떨어지는 원리다. 도자기를 만들 땐 전사 뒤 가열 과정에서 얼마나 색이 잘 살아나느냐가 핵심이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