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하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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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것이 모두 네가 세손 자격이 없다는 상소들이다. ‘하기사’ 지엄한 어명을 어기고 만백성 앞에서 누태까지 부렸으니 누군들 그리 생각하지 않겠느냐?” “식당 주인은 애꿎은 종업원들을 채근한다. ‘하기사’ 모두들 차를 몰고 오는데 주차장도 없는 집을 누가 덜렁 들어오겠는가.”

소설이나 방송 등에서 ‘하기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표준어가 아니다. ‘하기야’가 맞는 말이다. 사투리로 표현하면 표준어가 갖는 느낌과는 다른 말맛이 느껴지기 때문에 즐겨 쓰는 것 같다.

‘하기야’는 ‘실상 적당히 말하자면’을 뜻하는 부사다. “그 아이가 합격을 했다고? 하기야 그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떨어지는 게 이상하지”같이 이미 있었던 일을 긍정하며 아래에 어떤 조건을 붙일 때 쓴다. ‘하기+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여기서 ‘야’는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조사다. “자네야 자식이 공부를 잘하니 무슨 걱정인가?” “이제야 범인이 밝혀지는군”과 같이 쓰인다. 이 조사의 경상도 지역 사투리가 ‘사’다.

‘남이사’도 ‘남이야’가 표준어다. “하룻밤을 새우는 것쯤이야 견딜 수 있다.” “사람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지”에서의 ‘것쯤이야’ ‘사람이야’처럼 받침 있는 단어 뒤에서는 ‘야’ 대신 ‘이야’로 쓸 뿐이다.

‘사’는 “스승님은 우리를 염려하사 밤잠도 설치신다고 한다”에서처럼 예스러운 표현으로 ‘-시어’의 뜻을 나타낼 때도 쓰인다.  

한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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