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ABOOK] 나불대기 잘하는데 토론은 젬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말을 잘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써서는 안 되며,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좋은 말을 버려서도 안 된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그는 또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도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말을 잃지도 않는다”고 덧붙인다. 말은 이처럼 인간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요즘 아이들, 진짜 말 잘 한다. 자기들 하고 싶은 말을 아래 위도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마구 쏟아놓는다. 이길 장사가 없다. 그런데 희한하다. 정색을 하고 앉혀 놓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특정한 주제가 등장하고, 논리정연한 생각이 요구되는 자리에선 좌불안석이 된다. 슬슬 횡설수설이 시작되고, 좌충우돌, 동문서답이 줄을 잇는다. 결국 말대꾸는 잘하지만 대화는 안 되며, 나불대기는 잘해도 토론에는 젬병인 셈.

아나운서 이정숙은 『말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나무생각)고 주장한다. 근거 있는 주장일까. 그렇다. 말을 잘하는 아이의 성적이 왜 좋을 수밖에 없는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선진국 아이들이 어떻게 ‘말공부’를 호되게 하는지도 들려준다. 읽을수록 가슴이 철렁한다.

그렇다면 언변의 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하나. 절망은 금물. 해답은 성공한 유명인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다.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말을 잘한 건 아니었다. 말도 다른 재능처럼 연구하고 연습하면 조리 있고 재미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내친 김에 왕따 대신 짱이 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까지 가르쳐준다. 말이 곧 성적표라는 등식에 주눅 들었던 아이라면 새삼 희망이 불끈 솟아날 듯.

히구치 유이치의 『우리 아이의 말하는 힘 듣는 힘이 자란다』(뜨인돌)는 듣는 요령, 말하는 요령을 실제 문장 속에서 세세하게 가르쳐준다. 질문의 중요성과 요령을 비롯해 대화의 심리학까지 다루고 있다. 말 때문에 애 먹는 아이를 위한 실용적인 가이드북으로 짭짤하다.

아이의 말발에 일방적으로 밀리거나 툭하면 윽박질러 아이의 말을 가로막는 문제 엄마라면 일상생활 속에서 건져낸 화법 예시를 당장 활용할 수 있어 퍽 유익할 것이다. 말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말을 거르고 참는 힘도 중요하다는 것까지 아울러 가르친다면 백점 엄마는 떼어놓은 당상.

대상 연령은 지지배배 재잘대기는 잘해도 쓸 만한 말은 건질 게 없는 10세 이상의 어린이와 글쓰기 공부에만 정신 팔려 말하기 공부는 등한시해온 엄마들.

임사라 <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