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야 자식 공경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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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늙어서 자식 얼굴이라도 자주 보려면 돈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세간의 속설이 세계 27개국 가운데 한국에서만 통계적으로 입증됐다. 숭실대 정재기(정보사회학과) 교수가 10일 한국인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한국 가족.친족 간 접촉 빈도와 사회적 지원양상:국제간 비교' 논문에서다. 이 연구는 2004년 국내에서 13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종합사회조사와 2001년 세계 26개국 3만3232명이 참가한 국제사회조사(ISSP) 결과를 비교 분석한 것이다. 한국종합사회조사는 2005년 본지가 '광복 60년 한국인은 지금' 특집기사로 소개한 바 있다.

논문은 자녀와 따로 사는 60세 이상 부모를 소득.교육.연령.성별.결혼상태별로 나눈 뒤 어떤 부모의 유형이 자녀와 자주 만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세계 27개국 가운데 한국에서만 부모의 소득이 많을수록 자녀와 자주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과 대면접촉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회귀계수가 0.729였다. 회귀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크다는 뜻이다.

또 부모 소득이 1% 늘어나면 자녀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날 확률이 2.07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개 회원국은 되레 부모 소득이 많을수록 자녀와 대면접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따로 사는 부모.친지와 만나는 횟수도 한국이 일본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따로 사는 어머니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난다'는 자녀 비율은 한국.일본 모두 27%로 세계 26개국 중 최하위였다. 반면 따로 사는 부모와 만나지는 않고 전화 등을 통해 접촉한 비율은 각각 64%(아버지)와 73%(어머니)로 조사 대상국 평균인 54%와 65%를 웃돌았다.

그러나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찾는 사람'은 한국인의 경우 51.9%가 '가족 및 친족'을 꼽았다. 이는 27개국 평균인 41%보다 높은 수치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식구 간에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정서적 관계보다 의무적.도구적 관계로 흐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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