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許和平.稅盜.世界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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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세계화라는 기치를 높이 들었다.이젠『세계화 속에 미래가 있고 국익이 있다』고.새삼스럽긴 하지만 우리에겐 가장 절실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미래로,세계로 나아간다는데 그럼 누가 앞장서고 누가 쫓아갈 것인가.정부가? 관료들은 복지부동(伏地不動)한다고 지탄받고 세금도둑질 한다고 욕을 먹어 만신창이(滿身瘡痍)다.집권 민자당(民自黨)이? 그들은 뿌리 논쟁을 벌이느라 4 분5열되어 한쪽은 소수 가신(家臣)정치를 비웃고,다른 쪽은 비개혁(非改革)세력임을 나무라고 있다.그럼 국민이? 다리와 육교와 지하철이언제 무너질지 불안하고 세금은 도둑질당하고 국민 전체의 복리를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불신 속에 휩싸여 있다.
세계화를 이끌어 나갈 선도그룹이어야 할 관료들과 집권당,사회지도층이 서로 도덕성과 정통성,국가경영의 능력이나 비전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만 일삼으니 국력이 한 곳으로 결집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12.12「군사반란」주모자의 한 사람인 허화평(許和平)의원이제기하는 3당합당의 도덕성문제,강영훈(姜英勳)전 총리가 주장하는 6共옹호론(擁護論)등은 집권 신세력(新勢力)과 구세력(舊勢力)간의 알력이다.許씨의 논리인즉슨 12.12를 군사반란이라고한다면「군사반란」집단의 중심인 민정당을 주체로 한 민자당의 도덕적 기반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그는 여소야대(與小野大)정국 탈출을 위한 정치적 타협책에 불과했던 3당합당을 「역사적 필연」이라고 과장하는 전제 위에서 과거청산을 수차례 공언한 현정치지도자들에게 이를 지켜야할 정치도의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姜총리의 발언은 이와는 논리를 달리하지만 그러나 역시 과거의 일방적인 부정은 안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주장이다.특히 6공은 국민의 합의에 의한 헌법개정에 따라 창출된정부이므로 그것을 매도한다면 그 헌법과 그를 근거 로 한 수많은 법률을 부정하게 됨으로써 그 이후 정권의 존립근거가 없어진다는 억지소리를 하고 있다.
이런 류의 과거 묵인론(默認論)은 역사의 형식론적인 측면만을보려는 것이다.물론 그 형식적 절차에 있어서도 권력의 찬탈(簒奪)과 같은 원초적인 잘못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그들도 과거의 부정(否定)을 통해 자신들의 정권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었다.박정희(朴正熙)유신체제의 가장 충실한 수호자들이었던「하나회」장성출신들이 5공 군사정권을 수립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른바 권력형 축재자의 숙정(肅正)이라는 이름의 과거청산이었다.
6공은 군출신끼리의 정권 인계인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안정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전임자와 그 친인척을 줄줄이 잡아넣거나 심산(深山)의 절간으로 유배(流配)하지 않았던가.그들이 과거청산을 위해 벌인 온갖 통폐합과 폭력적 조치는 역사적 필연이고 다른 정권이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이 과거를 부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구실은 바로 전(前)정권의 비법(非法)적 권력남용과 부정 부패였다.군사정권은 바로 법질서를 흐트러뜨린 비법과 국가를 헤어나기 어려운 부정 부패의 늪에 빠뜨림으로써 총체적(總體的)부패의 상태 로 몰아간 책임만큼은 반드시 져야 하는 것이다.5공의 불법,6공의 부패에대해 許씨와 姜총리가 변명할 수 있을까.건설비리.정치자금 비리는 아직도 너무 많은 냄새를 풍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과거를 정리못한탓 부패구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누가즐겨 이문(利文)없는 성수대교의 보수.관리에 전념할 것이며 누가 뇌물이 올라오는 상납선인데 굳이 세금도둑을 잡으려고 애쓸 리 있겠는가 말이다.우리는 과거를 정리하지 못함으로써 도덕성은물론 국 가의 기강과 체계가 무너지고 결국은 정권적인 부담으로남는 것을 지금 목격하고 있다.
미래로,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유능한 인력의 확보,국력의 최대의 결집(結集)이 필요하다.과거도 폭넓게 수용하자는 데 우리는동의한다.그러나 그것이 쿠데타를 해도,한탕 저질러도 그냥 넘어가고 만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그것은 어디까지 나 과거의 반성이라는 과정위에서 이뤄져야지,과거의 묵인이나 은폐여서는 안될것이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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