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아라베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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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라베스크’-최정례(1955~ )

그는 내 이름을 끊으려 했다고
끊겠다고 했어요

그가 공사장에서
콘크리트 바닥을 해머로 내리치는 걸 봤어요
드릴로 구멍을 파고 불칼로 쇠를 잘랐어요
그는 느닷없이 소리 지르고 쌍욕을 해댔어요
그러다가도
날아가던 작은 새를 보고
그것은 참새가 아니라 방울새라고 했어요

나는 그게 방울새인 줄 처음 알았어요



거칠고, 우악스럽고, 야만적인, 더 이상 비인간적일 수 없는 난장판. 쌍욕까지 난발하는 한순간의 배경 속에서 참새가 아니라 방울새라고 말하는 인간적인 더 인간적인 사람의 본성이 거기 있어요. 그래요, 불칼로 쇠를 자르는 불꽃 속에 튀는 쇳가루들이 꽃잎처럼 나는 방울새가 있을 수 있어요.

<신달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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