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龍石 퍼포먼스 "돼지와 삭발여인의 기묘한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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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살아있는 돼지와 삭발한 여인이 1주일동안 동거한다.아무런 간섭도 연출도 없다.
돼지는 돼지의 방식으로 인간은 인간의 방식으로 그냥 서로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시골 농가 뒤켠 돼지우리가 아니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질 이 해괴한 광경은 바로『돼지와 인간』이라고 이름붙여진 행위예술가 하용석(河龍石.35)씨의 퍼포먼스(행위예술)의 한 장면이다. 지난 91년 아무 것도 전시하지 않고 전시장을 텅 비워둔채『미술의 죽음』을 선언해 화제를 모았던 河씨는 이번에도 이처럼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의 작품을 내놓았다.
23일부터 29일까지 박영덕화랑에서 벌어지는『돼지와 인간』전에서 河씨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문명비판이다.자연의 상징인 돼지와 문명을 대표하는 여인을 같은 공간에 둬 보는 이로 하여금공허한 현대문명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는 것이다.
돼지 조각 두개와 함께 등장하는 80㎏의 살아있는 돼지는 인간과 가까운 듯하면서도 인간이 더러운 동물이라 하여 멀리한다는점 때문에 문명에 대비되는 자연의 상징으로 선택됐다.
돼지와 함께 1주일 내내 쇠창살에 갇혀 지낼 삭발여인은 河씨부인의 친구다.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는 작가가 직접 누드로 이역할을 맡을 생각이었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고려해 옷입은 여인으로 바꿨다고 한다.
작가가 이 행위에 관여하는 것은 돼지를 간수하는 일 뿐이다.
돼지가 배설하는 오물을 신속하게 치워 가능한 한 빨리 악취를 제거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다.물론 이것도 작품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河씨는 행위예술이 일회성에 그쳐 예술작품으로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면 영원하지 않기는 모두 마찬가지』라며『굳이 어떤 가치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작품을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1 주일간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작품전이 끝나고 책과 영상매체로 기록,정리된다. 박영덕(朴榮德.박영덕화랑 대표)씨는『이번 전시는 작품 특성상 1천원의 입장료를 받을 것』이라며『입장권을 河씨가 찍은 진짜 오프셋 판화작품으로 대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544)8481.
〈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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