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땡땡이’의기술] 들통난 ‘애정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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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년 전 가을의 일이네요.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꿈 많던 아가씨였지요. 괜찮아 보이는 총각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를 발전시켜 볼까 하고 우리는 10월 단풍을 보러 내장산에 가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은 근무를 하는 지라 일요일에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우리는 몰려든 인파로 단풍은커녕 입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차를 돌려야 했습니다. 아쉬웠지만 하루 내내 함께한 여행 덕에 우리는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요. 11월 말이 돼 우리 둘은 각자 월차휴가를 내고 지리산에 가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일하는 날, 단 둘이 떠나는 기분은 짜릿했습니다. 천은사와 그 아래 호수를 걸으며 우리는 낙엽을 던지고, 나 잡아 봐라 하며 유치찬란한 시간을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순간, 왠지 뒤통수가 따갑더군요. 고개를 홱 돌렸지요. 그런데…. “헉! 우리 부서 팀장님이….”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월차휴가를 냈는데…. 더군다나 다른 부서 직원과 함께 있으니….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아내와 사별한 팀장님 옆에는 우아한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결재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잘해주시는 겁니다.

그 다음 해 가을 함께 땡땡이 쳤던 직장동료는 내 남편이 됐습니다. 한 달 뒤 우리 팀장님도 결혼식을 올렸고요. 신혼여행에서 다녀온 팀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지리산에서의 일, 비밀 지켜줘서 고마워.”

사실은 제가 더 고마웠지요. 그날 팀장님한테 들키는 바람에 신랑이 절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던 걸요.

이선자 (38·전업주부· 광주시 광산구 운남동)

12월 21일자 주제는 여행 에피소드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주소·전화번호·직업·나이를 적어 12월 17일까지로 보내 주십시오. 채택된 분께는 원고료를 드리며, 두 달마다 장원작 한 편을 뽑아 현대카드 프리비아에서 제공하는 상하이 왕복 항공권 및 호텔 2박 숙박권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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