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일하는 날, 단 둘이 떠나는 기분은 짜릿했습니다. 천은사와 그 아래 호수를 걸으며 우리는 낙엽을 던지고, 나 잡아 봐라 하며 유치찬란한 시간을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순간, 왠지 뒤통수가 따갑더군요. 고개를 홱 돌렸지요. 그런데…. “헉! 우리 부서 팀장님이….”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월차휴가를 냈는데…. 더군다나 다른 부서 직원과 함께 있으니….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아내와 사별한 팀장님 옆에는 우아한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결재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잘해주시는 겁니다.
그 다음 해 가을 함께 땡땡이 쳤던 직장동료는 내 남편이 됐습니다. 한 달 뒤 우리 팀장님도 결혼식을 올렸고요. 신혼여행에서 다녀온 팀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지리산에서의 일, 비밀 지켜줘서 고마워.”
사실은 제가 더 고마웠지요. 그날 팀장님한테 들키는 바람에 신랑이 절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던 걸요.
이선자 (38·전업주부· 광주시 광산구 운남동)
12월 21일자 주제는 여행 에피소드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주소·전화번호·직업·나이를 적어 12월 1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