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발표 승복하고 당당한 선거운동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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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 발표로 BBK 의혹이 해소됐다. 검찰이 발표한 내용은 구체적이고 입체적이다. BBK·다스 직원들이 진술했고, 과학적인 문서감정기법이 동원됐으며, 면밀한 계좌추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김경준 스스로가 계약서 위조, 허위 주장을 자백했다. 모든 후보, 모든 세력은 이 발표에 승복해야 한다. 진실보다 더 소중하고 강력한 가치는 없다.

 그럼에도 상당수 정치세력들은 검찰의 발표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다. 이들은 검찰 발표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유세일정도 중단하고 촛불규탄집회와 특별검사제에 매달리고 있다. 어떤 세력은 대선이 이대로 굳어져 정권을 잃을까봐, 어떤 세력은 출마 명분을 잃을까봐 이 문제를 정치 문제로 다시 확대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선거는 선거고 진실은 진실이다. 그들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 이제라도 BBK 미련일랑 버리고 정상적인 선거운동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동영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은 그동안 이명박 후보를 주가조작범으로 단정해 공격했다. 지금도 “검찰이 구형량으로 회유했다”는 김경준 메모를 내세우며 검찰 발표를 부정한다. 하지만 검찰에 따르면 구형량을 협상하려고 한 측은 오히려 김경준이다. 5년간 국정을 담당했던 제1당이 사기혐의자의 세치 혀에 언제까지 놀아날 것인가. 신당 의원들은 아스팔트 집회를 갖고 검찰을 규탄했다. 김경준이 무슨 민주투사인가. 검찰이 민주투사를 탄압이라도 했단 말인가. 촛불집회라니 5년 전 효순·미선양의 추억이 그리도 그리운가.

 이회창 후보 측은 범국민 저항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이 후보는 총리·선관위원장·감사원장에 무엇보다 대법관을 지냈다. 그런 그가 검찰이라는 국가제도를 부정하는가. 국민의 저항이라니 무엇에 저항하겠다는 것인가. 국가의 질서와 사법체계와 진실에 저항하고 사기혐의자 가족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새치기’ 출마로 이미 법과 원칙을 깬 당사자로서 처신이 부끄럽지 않은가. 이 후보는 이명박 후보가 불안한 후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출마한다고 했다. ‘불안’은 사실 BBK 의혹을 지칭한 것이다. 검찰이 의혹을 걷어냈으니 이회창 후보는 이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이제 그의 출마는 명분을 잃었다. 늦었지만 결단해야 한다.

 문국현 후보 측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단 한 글자도 인정할 수 없다”며 저항운동을 천명했다. 그들은 왜, 어떤 대목에서 검찰 수사가 틀렸는지는 지적하지 못한다. 중심을 잃고 다른 정치세력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뉴 페이스(new face)고 새 정치인가.

 대선은 수개월 동안 정상궤도를 벗어나 BBK 수렁에서 헤맸다. 이젠 제 길로 돌아와야 한다. 마침 오늘부터는 후보들의 TV토론이 시작된다. 이제 허위와 무고(誣告)의 칼은 던져버리고 정책과 비전으로 대결하라. 민생·일자리·교육·부동산을 놓고 치열하게 겨루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기다리라. 민심을 잃었으면 정권을 포기하고 야당으로 돌아가면 된다. 명분을 잃었으면 이제라도 대선에서 물러나 자숙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는 BBK 족쇄에서 풀려났다고 오만해선 안 된다. 그에겐 여전히 선거법 위반, 범인 도피, 위장 전입, 위장 취업의 주홍글씨가 붙어 있다. 그는 겸손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김경준 가족의 세치 혀에 세계 13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수개월간 춤을 추었다. 장단은 태평양 건너 미국서도 울렸고, 어머니라는 사람이 실어 나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정치세력들과 일부 사회세력은 BBK 굉음을 울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이런 허무한 사기극에 우리 사회가 놀아나는 풍토가 문제다. 진실에 대한 관심보다는 허위일지라도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허위를 좇는 풍토가 문제다. 진실이 드러났다. 그 진실의 거울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얼굴을 비친다. 5년 전 김대업의 추억이 있건만 한국 사회는 이번에도 불신의 유령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런 식의 대선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거짓말이 난무해도 상식과 진실이 승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성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