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케이블TV 여성 성상품화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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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 소설이나 에로비디오에 나올 법한 선정적인 대사들이 케이블TV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안방까지 그대로 전송되고 있다. 말로 옮기기 어려운 영상의 경우 그 선정성의 농도는 음성이나 자막보다 짙다. '19세 이하 시청금지 표시가 붙은 프로그램이다' '밤 늦게 방송한다' '돈 내고 보고싶은 사람만 보는 케이블 방송이다'는 등의 가림막 속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 여성의 성상품화 실태에 대한 세미나가 지난달 30일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과 지역여성미디어 '네잎찬' 운동본부에서 함께 주관한 '방송미디어 여성연예인 성상품화 실태와 개성방안-케이블TV 방송 프로그램 중심으로' 세미나에서는 케이블TV 방송을 통해 전송된 여성 연예인 및 여성 출연자의 성상품화 실태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 "여자는 엉덩이를 살살 긁어줘야 넘어와" "바지 입고 오면 찢어버릴 거야" "팬티 좀 내릴 수 없나?" 라는 등 가정에서 듣기 낯뜨거운 대사들이 그대로 방송되고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지향 미디어 팀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5월~6월 수원, 성남, 대구, 부산, 광주, 목포, 강릉 등 11개 지역 일반 시민 14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시청자의 85.98%가 '여성연예인의 성상품화가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전체의 48.29%의 시청자는 '지나친 상업주의 때문에 여성연예인이 이용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11개 케이블TV 방송사의 30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 한 결과도 발표했는데 총 111회의 방송분에서 1060건의 성상품화 장면이 방송된 것으로 나타났다. TVN의 'tvNGels'의 경우 여성 출연자들이 속옷을 벗거나 몸에 물을 뿌리고 속옷이 보이게 치마를 들추는 모습이 방송됐다. 또 Mnet의 '빤따스틱 핫 바디'에서는 가슴이 큰 여성 출연자에게 진행자가 "머리가 세개 있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향 팀장은 "방송에서의 '성상품화'는 대부분 제작자와 연출기법에 의한 현상"이라며 "방송의 제작풍토를 개선해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TVN의 정영환 편성팀장은 "특정한 악의적인 의도에 의해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프로그램이 단순한 트렌드이고 유행이기 때문에 다수 제작되는 것 같다"며 "케이블TV 방송사의 자체제작 프로그램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채널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좌지우지 하는 것 역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자구적인 노력이 기울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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