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북핵 해결, 그 이후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북한 핵무기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해 왔다.

아직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1월 5일 본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앞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부터는 포스트 북핵시대에 대비해 나가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북핵문제 해결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 뿐 실제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명백하게 포기했을 때 한반도와 주변 상황은 어떻게 되고 우리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조정돼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 북핵 평화적 해결 가능성 커져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북한 핵문제에만 집중해 왔는지 모른다. 그 결과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가 대북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론 북핵 제거는 우리의 대북정책의 전부가 될 수는 없고 또 궁극적 목표도 아니다.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비핵화는 그들의 대북정책의 전부가 될 수도 있고 또 궁극적 목표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입장은 다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분단된 조국을 다시 하나로 만들고 우리 겨레 모두에게 자유가 보장되는 통일 민주국가를 세우는 일이다.

사실 우리가 북한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이유도 북의 핵무장은 우리의 평화통일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만일 북핵문제에 대한 '해결'이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영구히 고착하는 것이라면 그런 해결은 우리가 원하는 해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의 안정을 원하면서도 단순한 현상유지에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 분명한 반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입장에서는 안정을 위해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시간 문제다. 그 해결의 순간이 언제 올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로 영원히 갈 수는 없다.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우리의 주변정세는 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갈 것이 틀림없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에 놀라운 변화도 예상할 수 있고 그 결과는 한국과 미국 관계에도 임팩트를 끼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이 근본적으로 재편돼야 할 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도 재정립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전환'의 태풍이 불어오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대북 정책을 새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대북정책의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가 있어야 하겠다. 지금까지 제시된 대북정책 모델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있고 종래의 전통적인 대북 제압정책이 있는데 둘 다 문제가 있다.

대북 제압정책은 냉전시대의 유산으로 남북 간의 대결을 '제로 섬 게임'으로 상정하고 있다.

햇볕정책은 이와는 정반대로 북한을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기만 하면 북한이 스스로 변할 것이라는 거의 종교적인 신앙과 같은 독트린이다.

*** 햇볕정책은 北 변화 유도에 한계

그런데 대북 제압정책의 문제점은 실제로 남북관계는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경쟁과 협력의 양면을 모두 가진 혼합 게임이라는 사실에 있고, 햇볕정책은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너무 안이하게 낙관함으로써 실제로 대북 경협이 내포하고 있는 변화 유인의 기회마저 놓치는 문제가 있다.

핵문제가 해결된 환경에서 북한을 통일의 길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압정책이나 햇볕정책으로는 부적합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모델을 구상해야 한다.

핵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한국은 대(對)북한 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까지는 대북 어젠다가 핵무기 문제였던 만큼, 한국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대북한 경제협력, 점진적 개방 유인, 체제변화 등의 이슈가 한반도의 어젠다를 지배하게 되면서 한국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결코 이르지 않다고 믿는다.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