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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닮은꼴 국제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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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 한국을 버리다
나가타 아키후미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264쪽, 1만원

제목 보고 놀랄 것은 없다. 당장은 현재도, 미래도 아닌 20세기 초 과거를 파헤친 역사책이니까. 그렇지만 국제정치와 국가간의 신뢰라는 점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많은 책이다.

“나는 일본이 한국을 손에 넣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견제가 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행동에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31쪽)

“만약 우리가 감정적 이유 때문에 이 ‘제국’의 독립을 지원하려고 한다면 큰 과오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자치가 불가능하다…한국은 일본에 속해야 한다.”(57쪽)

이것,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려던 일본의 우익이 한 망언이 아니다. 앞엣 것은 1900년 당시 부통령 후보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친구에게 보낸 서한에 실렸다. (그는 1901년 제26대 대통령이 되었다.) 뒤의 발언은 1904년 주한 미국 공사였던 알렌이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다.

반면 조선은 고종을 비롯해 대신들이 미국을 일본 등 열강의 야욕에서 구해줄 생명줄로 여겼다.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었다. (구미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교조약이었다) 그리고는 당시 동양 최대로 알려졌던 평북 운산의 금광채굴권, 경인철도 부설권, 한국 최초의 발전소 설치권 등 각종 경제적 권익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조선의 간절한 희망을 냉정하게 외면한 채 일본의 야욕을 방조했다.

지은이인 일본 사학자는 몇 가지 이유를 든다. 조미통상수호조약의 제1조 주선(周旋) 조항에 대한 인식 차를 으뜸으로 꼽았다. ‘제3국이 체약국의 한 쪽을 억압적으로 다룰 경우 체약국의 다른 한 쪽이 원만한 해결을 주선한다’는 내용을, 한국은 동맹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미국은 수교에 즈음한 단순 인사로 생각했단다. 게다가 한국의 경제적 비중이 적어 미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문제에 끼어들 생각도 없었단다. 결정적으로 미국은 러시아의 남진 억제와 필리핀 확보를 위해선 좀더 문명화한 일본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미 관계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국제정치의 현실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고, 북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는 국제정치의 초점 중 하나기 때문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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