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정 한일은행장 사퇴-금융계 반응과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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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순정(尹淳貞)한일은행장 사태를 계기로 금융계에서는 『자율인사의 원칙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초기에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른 후 어렵사리 도입된 「은행장 추천위원회 제도」등을 통해 금융계에서는 외형상으로나마 『정부가 과거처럼 은행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하지는않는구나』하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돼갔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나서서 『은행 인사에 외부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실제로 일부 은행에서는 은행장 선임과정에서 전과는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그러나 尹행장의 「돌연한 사퇴」는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 「 자율화」의 싹을 송두리째 꺾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금융계에 다시 높은불신의 벽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한 금융계의 고질병인 「투서(投書)질」이 다시 기승을 부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물론 尹행장은 서면 해명서에서 「절대로 타의(他意)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금융계에서는 거의 없다.오히려 제2의 사정(司正)한파가 몰아 닥치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분위기다 .
한 은행관계자는 『잘못이 있다면 은행장이 그만두는 것은 당연하지만 방법과 수순이 이런 식이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다른관계자는 『이같은 일이 자꾸 되풀이되다 보니 은행들이 아직도 소신껏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이는 국내 금융산업 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개방화.국제화시대를 맞아 보다 실질적인 자율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한편 문민정부 출범이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도하차한 은행장들은 대부분이 금융계를 떠나 집에서 그냥 소일 하고 있으나 그중 일부는다시 조용하게 재계등으로 복귀했다.지난 4월 한국통신 주식입찰가 조작사건의 책임을 지고 외환은행을 떠났던 허준(許浚.57)前행장은 대우증권 회장으로 변신,활동을 재개했다.제2의 장영자사건에 휘말려 올초 옷을 벗은 김영석(金永錫.57)前서울신탁은행장은 우여곡절끝에 최근 계열사인 서은상호신용금고회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4월 동생이 경영하는 H개발에 불법대출했다는 이유로 사임했던 박기진(朴基鎭.64)前제일은행장은 삼고초려(三顧草廬)끝에 최근 경영고문자격으로 제일은행이 마련한 사무실에 출근하고있으며 선우윤(鮮于潤.60)前동화은행장은 지난 7월부터 텐트수출업체인 ㈜진웅의 해외담당 총괄부회장에 취임,기업인으로 변신했다.외환은행장을 마지막으로 지난해봄 금융계를 떠난 김재기(金在基)씨는 최근 유선방송협회장에 취임해 「진짜」금융계를 떠났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이후 첫 케이스로 옷을 벗은 김준협(金俊協.59)前서울신탁은행장은 집에서 쉬고 있고 안영모(安永模.68)前동화은행장은 외부인사와의 접촉을 피한 채 조용하게 지내고있다. 〈金光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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