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승삼칼럼>管理도 治績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가관리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警告音)이 잇따라 울리고 있다.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충격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군 사격장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이다.앞으로도 또 언제,어떤 깜짝놀랄 일이 벌어질지 불안감이 가중되는 오늘이다 .
「신한국(新韓國)의 건설」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더 시급한 것은 현 한국의 관리임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값비싼 대가를 치른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주는 귀중한 교훈도 그러한 것이다.
정부의 진단대로 우리들이 물려받은 것은「부실기업」이었다.멀쩡해보이는 다리가 실은 임시 가설한「부교(浮橋)」에 지나지 않았고 겉으론 화려한 아파트군(群)도「가건물」수준을 넘지 못했다.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문제는 그 진단과 깨달음이 소를 잃고 난뒤에야 나왔다는 데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만 보아도 외양간이 얼마나 낡고 허술한가 하는데 대해선 너무도 깜깜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내년에 국도(國道)에 투자하는 총규모는 2조2천7백47억원이나 된다.그러나 이중 87.8%는 국도의 확.포장(擴.鋪裝)예산이고 유지.보수예산은 그중 불과 12.2%다.외양간이 곧 무너질 위기에 있는건 까맣게 모르고 그저 소를 살찌워팔 궁리나 하고 있었던 셈이다.
성수대교의 붕괴도 바로 이런 무지(無知)와 새로운 성과에만 급급한 실적주의에서 비롯됐다.30여년의 실적위주 정치적 행정은정부당국자들에게 새로운 사업만이 국가건설이며 발전이란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었다.현재의 것을 잘 유지.관리하는 것도 분명히 건설이며 발전이란 인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새 다리를하나 더 건설해도 있던 다리가 무너지고 말면 새로 건설하나마나일 수밖에 없다.생각이 굳은 탓에 이 간단한 산술을 깜박했던 것이다. 사회의 요구에 비해 투자재원은 언제나 부족하게 마련이다.이럴 때 재원을 가장 경제적.효율적으로 쓰는 길은 예방에 투자하는 것이다.약물에 중독된 아기를 치료하는 것보다 임신부의약물복용을 막는 것이 효과적이고 또 경제적임은 상식적으 로도 알 수 있다.「영리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나 천재는 문제를 미리 예방한다」는 말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격장 총기난사 사건만 해도 정부가 군전력(軍戰力)증강을 위해 새로운 무기체계를 갖추는 데만 급급했지 전력향상의 기초가 되는 장병관리체계의 개선에는 투자를 소홀히한데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국가경영과 관리에 대한 인식과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우리들은 너나없이 그동안의 성취에 너무 자만(自慢)했다.
「선진국으로의 발돋움」이니,「선진국 문턱」이니 하는 정치적 상징조작에 정부 스스로도 취해버렸다.이제는 모두가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우리는 아직도 멀었다.그렇다고 자학(自虐)하거나 좌절할 것까지는 없으나 최소한 제 분수는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다시 시작하자.손 댈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이 모든 것이바둑으로 치면 발빠른 포석(布石)과 운석(運石)만을 장기로 했던 탓이다.발빠른 바둑은 대세도 빨리 장악할 수 있고 옆에서 보기에도 좋지만 그만큼 곳곳에 허점과 약점을 지니 게 마련이다.이제부턴 두터운 바둑을 두어야 한다.발은 느리지만 두텁게 두텁게 두어나가면 중반 싸움에 강할 수 있고 종반엔 실리도 쉽게챙길 수 있다.
새 사업위주의 건설은 정치적 행정의 유산이다.다리 기공식에는누구나 참석하고 싶어 하지만 다리 보수공사에는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이 바로 정치의 생리다.그런 정치의 생리를 앞으로의 국가경영에선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신규사업 만이 치적(治績)인 것은 아니다.유지.관리도 치적이다.
***국가경영 발상 바꿔야 성수대교를 15년 전에 건설할땐 1백억원대의 예산이 들었지만 지금 6차선으로 하면 1천5백억원대가 든다.지을때 잘 짓고 유지.관리를 잘했더라면 경제적으로도이익이다.이를 누가 치적이 아니라고 하겠는가.보수와 유지.관리도 사회간접자 본확충이다.내년 예산부터라도 새로운 발상(發想)으로 다시 짜자.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