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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진단>군기강 문란 왜 자꾸 생기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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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단순 총기난동 사건인가, 아니면 군(軍)지휘체계의 구조적 문제로 군 전체가 넋이 나간채 마비되어 있는가.
10월31일 경기도 양주군 육군 ○○부대에서 일어난 사병의 장교사살 사건은 그저 1회성에 그치는 단순사건으로 보아 넘기기어렵다. 불과 한달전 사병들의 하극상을 고발하기 위해 장교들이무장탈영한 사고로 군 내부의 기강이 엉망임이 드러났었다.
이번 사건은 군 내부에 뭔가 문제가 있어도 큰 문제가 있음을드러낸 것이다.
사병관리와 부대운영에 군 전체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부대는 육군 최정예부대중 하나이고,장소도군기(軍紀)가 가장 센 사격장에서 일어났으며,오발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장교를 먼저 쏜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육군은『사건을 일으킨 서문석(徐文錫)일병은 부모가 없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난 문제아였다』고 모든 책임을 徐일병에게 돌리고 있다. 육군및 군 관계자들의 태도는 늘 이런 식이다.좀더 근원적 원인과 대책을 생각해보기도 전에 모든걸 네탓으로 돌리고 눈앞에 놓인 현상 막기에 급급하다.
군의 이러한 병적인 태도의 원인은 훨씬 더 깊은데 있다.말단소위와 사병의 문제가 아니라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등 소위군을 지휘하고 있는 고위 당국자들로부터 시작된다.
과거 군부 정권때 정치.경제.군사.문화등 모든 것을 휘두르던당시 정치군인들이 저지른 나쁜 풍조와 그에 물든 군 사회의 세태가 아직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문민정부 들어 군부 숙정에 무조건 몸조심으로 일관해온 지휘관의 문제 다.
국방부 장관 이하 많은 고급 군인들이 부대관리보다는 청와대의움직임을,국방부 장관의 생각을,또 총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좋게 보이는 대안을 미리 갖다바쳐 인정 받으려는 것이 만연된 관행이었다.
바른 말 하거나 모나면 손해라는 생각,인정받은 점수를 까먹지않기 위해 내가 지휘관으로 있는 동안은 말썽나지 않도록 하고 문제가 있어도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내부단속하라는 지휘방침이이번 사건과 지난번 53사단 하극상의 원인이었 다.
또 사태의 책임을 가급적 하위 직급으로 당사자에게 떠넘기는 행태에도 그 원인이 있다.53사단 하극상및 탈영사건의 뒤처리 과정에서 1차 책임은 사병,2차 책임은 소.중대장,3차 책임은대대장까지 부과하고,부대 지휘를 잘못한 사단장에 게는 책임없다는 식으로 처리됐다.참모총장이나 장관이 책임지는 풍토는 언제부턴가 없어졌다.
53사단에 대한 국회의 책임 추궁에 대해 장관과 육군총장은『원인을 철저히 분석한뒤 재발방지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자신들보다는 아랫사람에게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답변했고,사병의 하극상을 중심으로 군기확립을 실시했다.
이에 따른 후속대책인 군기확립은 사병들의 불만을 강화시킨 것으로 관측된다.
육군은 가정불화를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범인徐일병이 장교만 골라 쏜 것이 장교-사병간 불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격훈련장에서 지휘관을 쏘는 것은 전시에 총부리를 뒤로돌리는 것과 같다.
지휘관이 사병을 적극 돌봐주고 사적인 감정없이 훈련과 국토방위에 전념했더라면 이런 사건이 일어났겠는지 군 문화와 부대운영에 의문이 제기된다.
또다른 문제는 군을 구성하는 병사들이 새로운 세대들로 충원되고 있음에도 이에 맞는 새로운 병영문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장교 교육이나 사병 교육이 과거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어나지 못하고 도식적인 채 남아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후 군은 군의 길이 어떤 것인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타를 줄이라면 통솔할 수단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군기가 문제되면 또 훈련과는 관계없는 기합등 무리수가 나온다.군이 어떤모습이어야 하는지 청사진이 없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우리 사회의 고질인 교육제도의 문제와가정교육도 이같은 왜곡된 병영문화 형성에 책임이 있다.
교육이 입시중심으로 공동생활과 시민으로서의 가치를 심어주는데실패했다는 지적은 오래 전에 제기됐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며 우리의 자녀들은 과보호와 입시경쟁속에 허약한 기능적 인간으로만 육성되고 있다.
바로 이같이 교육된 젊은이들이 장교나 사병들로 충원되고 있다. 여기에 군 지도부의 경직된 사고도 큰 원인을 제공한다.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군은 신세대 사병및 장교에 대한 교육훈련과 부대운영 방법,특히 시대에 적합한 군 문화 등 종합적인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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