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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군지도부도 책임지는 풍토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스라엘과 아랍의 6일전쟁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사실은 너무나 유명한 얘기다.
이스라엘의 승인(勝因)중 하나는 상대인 아랍군대의 형편없는 군기(軍紀)였다.
아랍군대는 사병들이 장교들을 마구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해 그야말로 군기가 땅으로 곤두박질칠 대로 쳤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군은 어떤 모습인가.
사병들이 새로 부임한 소대장을 길들인다며 집단구타하고 군화를몰래 훔치는 것은 예사다.일개 일병이 장교들에게 반말하는 것은類도 아니다.밤중에 내무반에서 신참하사들이 모포를 뒤집어쓴채 사정없이 두들겨맞기도 한다.
장교들은 또 어떤가.소대원들의 하극상에 냉정히 대처하지 못하고 소총과 실탄.수류탄을 들고 민가와 산을 날뛰며 난동을 부렸다. 이번 사병의 장교사살사건은 곤두박질친 우리 군기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이제 우리 군대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와 있다.
53사단 장교.하사관 무장탈영사건 및 소대장길들이기사건 이후대대적인 군기확립을 벌입네,전군(全軍)주요지휘관회입네 하고 난리법석들을 폈지만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 군에는 군이라는 개념에 가장 중요한 무엇이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바람직한「군의 길」이요 그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군기다. 지난해 문민정부가 들어서 정치군인 정리라는 숙군(肅軍)으로 1차 개혁을 겪은 군이「군기강화」라는 2차 개혁에 돌입했지만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마침 육군은 공교롭게도 오늘부터 연말까지「군기강 쇄신대책위원회」를 가동시킨다.
군지도부는 부하들의 군기를 말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군기를 생각해 봐야 한다.
잇단 사고에 대해 지도부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는 지도부에 요구되는 군기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군에는 지도자가 책임지는 풍토가 없어졌다.
윗사람의 든든한 신임만 있으면 그만이다.
위로부터 책임지는 군기가 없다면 아래의 군기를 말할 수 없다. 53사단사건때도 관련장교와 수많은 사병들만 구속되고 고위급은 한 명도 책임지지 않았다.
엄청난 사건이 잇따르는데도 모두가『네 탓』이라며 윗사람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은 스스로 군기가 없음에 다름 아니다.
사병에서 장성,장관에 이르기까지 제역할을 하는 투철한 책임의식이 있어야 군은「군의 길」을 찾아 제대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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