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으로 마케팅" 모로코 눌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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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세계박람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는 실패했었다. 왜 평창은 지고 여수는 이긴 걸까. "러시아에는 지고 모로코에는 이길 수 있었다"는 말로 설명된다.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국력이었다.

평창은 러시아의 소치보다 여러 모로 우위에 있었다. 실사팀도 "역대 최우수"라고 평가했다. 판세 점검에서도 확실히 앞섰다. 이런 상황에서 소치는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힘의 외교 덕분이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에너지 강국 러시아가 국제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 무력을 과시한 뒤부터 유럽은 러시아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푸틴이 막판에 투표지인 과테말라로 날아가 투표장을 휘젓고 다니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는 분석이다. 푸틴이 투표지에서 각국 대표단을 맨투맨 접촉하면서 유럽의 표심이 움직이는 게 눈에 보였다고 당시 대표단은 설명했다.

반면 이번에는 우리의 외교력이 모로코보다 한 수 위였다. 여수 유치위원단에 따르면 여수는 모로코의 탕헤르에 시종 앞섰다. 모로코는 미수교국 32개국을 포함해 세계 44개국에 공관을 두지 못했다. 국력과 외교력을 앞세운 마케팅이 주효한 것이다.

국제적인 네트워크 구축에서 우리보다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총회 개최지인 프랑스의 한국대사관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세계 각국의 공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세계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의 표심을 매일 체크했다.

기업의 힘도 컸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삼성과 LG.SK 등이 직접 나서면서 정부가 하기 힘든 민간 외교를 펼쳤다. 특히 기아자동차가 결선 투표를 열흘 앞두고 BIE 각국 대표들을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고성에 초대해 열었던 시승식 행사는 '친한파' 확보에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이 밖에 유럽 각국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 해외 지사는 각국 경제부처와 접촉, 홍보활동을 펼치는 한편 수시로 현지 동향을 전했다. 최종 판세 분석이 거의 들어맞았던 것도 공관과 기업의 중복 점검 덕분이었다. 조태열 통상교섭조정관은 "해외공관과 기업의 해외 지사가 하나가 돼 각국의 동향을 분석하고 신속하게 대응했던 게 승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모로코는 열세를 느낀 뒤 7월부터 아프리카 국가를 새로 가입시키는 변칙 전술을 썼다. 그러면서 한때 우리와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따라왔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력은 아프리카에도 통했다. 유치위 정찬용 부위원장은 "오랜 세월 동안 아프리카에 우리 국제협력단 등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쌓아 신규 아프리카 가입국과 수월하게 접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차 투표에서 이기고, 2차에서는 졌던 평창의 교훈도 막판 표 지키기에 도움이 됐다. 1차 지지를 약속한 나라의 이탈 방지를 약속받으면서 동시에 1차에 폴란드를 지지한 동유럽 표를 상당수 끌어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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