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미국시장도 발품이 통하더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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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미국시장 개척을 위해 직접 시카고로 간 중소기업 직원들. 왼쪽부터 정명수 금정공업 과장, 최정 동남중공업 대리, 김영연 KPF 과장.

“인터넷 세상이라고요? e-메일을 아무리 보내도 바이어들은 꿈쩍하지 않아요. 발품 팔아 직접 찾아가야 바이어들의 요구를 바로 알 수 있죠.” (정명수·36·금정공업 과장)

 “기술력이 좋아도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현지에 가서 뛰어야 바이어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어요.”(김영연·37·KPF 과장)

 두 사람은 모두 4월 중소기업청의 ‘해외시장 개척요원’에 신청해 미국 시카고로 무작정 떠났다. 밑천이라곤 회사가 만드는 제품의 기술력 하나였다. 중소기업 직원들이 좌충우돌로 미국 시장에 도전한 것이다. 그리고 반년 만에 그들의 무모해 보였던 도전에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카고로 떠났던 해외시장 개척요원들의 ‘미국 시장 개척기’를 들어 봤다.

 ▶KPF는 60년 넘게 산업용 패스너(볼트·너트)를 만든 중견 기업이지만 최근 저가의 중국산에 밀리고 있었다. 정밀도를 높인 신제품을 개발했지만 해외시장을 어떻게 뚫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김 과장은 무조건 미국으로 갔다. 그는 KOTRA 시카고 무역관의 도움을 받아 미네소타·오하이오·미시간·인디애나·켄터키에 있는 기업들을 일일이 찾아 다녔다. “미국 기업들도 우리 품질은 인정했어요. 그런데 이미 대만 업체가 꽉 잡고 있어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더군요.” 그러던 중 그는 6월 시카고 전시회에서 N사 관계자를 만났다. 이 업체의 아웃소싱 담당자는 “거래하는 대만 업체가 품질은 괜찮은데 대응이 너무 느리다”며 불만이었다. 그는 “무조건 우리에게 기회를 달라”고 졸랐다. 그 결과 견적서 요청을 받아 내고, 약속한 날짜에 견적서와 요청하지도 않았던 다른 자료까지 챙겨서 보냈다. 비싸다는 바이어와 재빨리 협의해 가격을 조정하기도 했다. 그의 빠른 대응에 만족한 바이어는 9월 30만 달러어치의 패스너를 주문했다. 이전 대만 업체보다는 5~30% 높은 가격이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내년엔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할 겁니다.”
 
▶펌프를 만드는 금정공업의 정 과장은 시카고에 온 뒤 각종 세미나와 전시회를 모조리 쫓아다녔다. 여러 업체 관계자를 만나면서 알게 된 건 중국 회사와 거래하는 업체들이 공통된 불만이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어들이 중국 업체와는 얘기가 잘 안 통해 다루기 어렵다고 했어요. 중국산보다 비싼데도 한국 제품에 관심이 많았죠.” 그는 Z사가 중국의 증치세 환급률 인하 때문에 거래선을 바꿀지 고민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당장 카탈로그를 보내고 만날 약속을 잡았다. “품질은 유럽산과 비슷한데 가격은 더 싸다”는 설득에 바이어가 마음을 움직였다. 정 과장은 “올해 안에 논의를 끝내면 내년께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중공업의 최정(27) 대리는 처음엔 그야말로 막막했다. 굴착기용 연결장치를 만드는 동남중공업은 수출을 해본 적이 없었다. 최 대리는 시카고 무역관 직원들과 ‘미국에 어떤 업체가 있나’부터 조사했다. 지난달 처음 전시회에 참가해 미리 점 찍어 뒀던 K사와 P사 관계자를 만났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K사와는 내년 3월 라스베이거스에서 협력전시를 하기로 했어요. P사도 거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고요.”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미국에 남았다. 회사가 내년에 지사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을 하기로 해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한애란 기자
 
◆해외시장 개척요원=중소기업청이 1999년부터 시행해 오는 제도로 매년 300여 명의 중소기업 근로자를 세계 60여 개국에 있는 중소기업진흥공단과 KOTRA에 파견한다. 6개월간 월 평균 110만원의 체재비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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