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27> 내셔널리그, 너의 정체는 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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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올해 한국 축구판을 얼룩지게 한 ‘추태 시리즈’의 하이라이트가 23일 울산에서 터졌다.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에서 수원시청 선수들이 전반 페널티킥 판정에 항의해 주심을 밀치고, 욕설을 하다가 4명이 줄퇴장을 당했다. 후반 2분에는 대기심을 향해 스로잉을 한 수원시청 선수가 다섯 번째 레드카드를 받았다. 축구는 한 팀이 6명이 되면 몰수패가 선언된다.

사태는 예고돼 있었다. 내셔널리그 우승팀이 K-리그로 승격하게 돼 있었지만 울산 현대미포조선을 뺀 9개 팀이 “우리는 우승해도 못 올라간다”고 못 박았다. 지난해 국민은행이 우승을 하고도 올라가지 않겠다고 해 난리가 났다. 미포조선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 수밖에 없었다. 이날 주심은 경기장 내 폭행 사건으로 K-리그에서 퇴출된 심판이었다.

도대체 내셔널리그가 뭐기에 능력도, 의지도 없는 팀들을 K-리그로 끌어올리려고 기를 쓸까. 그리고 그 때문에 난장판을 제공하는 걸까.
내셔널리그의 전신인 실업축구는 1970년대까지 한국 축구의 기둥이자 정점이었다. 그러나 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고, 포항제철·대우·럭키금성 등 명문 팀들이 프로로 변신하면서 K-리그에 장자(長子) 자리를 내줬다.

실업축구는 새천년 들어 변화의 전기를 맞는다. 2001년 대한축구협회가 야심 찬 ‘2010 프로젝트’(10대 과제)를 내놓으면서 ‘프로팀 추가 창단 및 1, 2부 승강 시스템 구축’을 다섯 번째 자리에 올려놨다. ‘큰집’의 지엄한 명령에 실업축구연맹이 바빠졌다. 명칭을 K2로 바꾸고 2003년부터 지역 연고를 정해 연중 리그를 실시했다. 2007년에는 우승팀을 승격시키겠다고 큰소리쳤다. 지난해엔 명칭을 내셔널리그로 또 바꿨다.

내셔널리그 소속 선수들은 직장인이지만 업무는 하지 않고 운동만 한다. 팀에서는 “열심히 훈련해 좋은 성적을 내라”며 급여를 주고 승리수당도 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프로다. 그러나 운영은 아마추어만도 못하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도 100여 명을 앉혀 놓고 경기를 치르기가 일쑤다. 홍보·마케팅·수익사업은 생각지도 못한다. 구단 프런트가 한 명인데, 그가 단장의 딸인 팀도 있다.

K3가 지난 주말 첫 시즌을 마쳤다. 10개 팀 선수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밤이나 주말에 모여 훈련을 한다. 우승을 한 서울 유나이티드는 홈 경기에 입장료 1만원을 받고, 대기업의 후원도 받는다. 형보다 나은 아우들이다.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도 아닌’ 내셔널리그를 어찌할 것인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축구협회와 실업연맹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축구팬은 더 이상 축구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지는 아수라 판을 보고 싶지 않다.

 
정영재 기자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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