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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기행>"의무의 원칙" 데이비드 셀분 著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영국에서는 지금 교조적인 좌익과 우익 때문에 현대시민의 윤리관이 변질되었다고 지적,그 대안으로 할 말은 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제시한 정치철학서 『의무의 원칙( Principle of Duty)』(Sinclair-Stevenson 刊)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영국의 보수 유력지인 타임스지의 경우 사설.서평.독자란 등을 통해 여섯차례나 이 책을 소개했으며 좌익쪽에서도 비난은 커녕 데이비드 셀분의 아이디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해 『의무의 원칙』은 영국인의 정신세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이 책의 논조는 현대사회가 지나치게 개인주의로 흐르다보니 시민권의 의미가 「의무가 따르지 않는 절대권리」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그 결과 특수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야만적인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 셀분 의 주장이다. 셀분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시민권의 의미가 크게 변질된 원인의 일부를 미국혁명으로 돌리고 있다.서구 각국에 절대적 영향을미친 미국혁명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는 천부인권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이런 사상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특히 복지문제가 결부될 경우 그 어떤정치적 아이디어도 천부인권사상에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현대사회에 대한 셀분의 경고는 아주 간단하다.『어느 사회도 개인의 권리추구만으로는 지탱이 불가능하다.그 런 권리보장에 앞서 필수 요건인 의무나 집단책임이 우선돼야 한다.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시민책임을 짊어지려 하지 않을 경우에는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그렇게 되면 비이성적인 권위체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셀분의 주장은 공산주의 붕괴후 경직성이 어느정도 누그러진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몇년전까지만해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었다.그는 옥스퍼드대에 재직중이던 80년대 중반에 이미 타임스지에 같은 논조의 글을 발표했으나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적 입지를 잃는 결과만 낳았다.그 당시 영국의 사회분위기는 마거릿 대처수상이 갱조직으로 유명한 영국의 인쇄노조를 부수기 위해 신문왕 루퍼트 머독을 지원할 정도로 지나치게 대립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셀분은 대학강단에서 인권에 대한 강의를 하려다 인쇄노조원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강의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 환멸을 느껴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버렸다.그는 지금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좌익이 인권에 대 한 강의를 방해한 그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힌다.이탈리아의 고풍스런 도시 우르비노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사는 셀분은 최근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이 독자들의 관심권으로 들어감에 따라 어렵게 지적 해방감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 정부나 기업등 사회기관의 행태는 셀분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국가기관 역시 현대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을 망각하고 있다는 쪽이다.정부가 시민들의 개인적인 이익에 영합하지 않고 본래의 목적을 좇았더라면 정부서비스가 지금처 럼 부패하고비효율적으로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일이 어려울 것같지만 셀분은 아주 낙관적이다.교사가 자기 직업을 신이 내려준 천직으로 여기는 사회,노동자들이 자기 일에 프라이드를 가지는 분위기,경찰이 지역사 회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던 사회분위기는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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