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승리의 길 못찾아 광야 헤매는 후야오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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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제2국
[제6보 (106~123)]
白.胡耀宇 7단 黑.趙治勳 9단

둘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변 흑이 약하지만 공격이 먹힐지 의문이다. 형세는 분명 괜찮은데 섣부른 공격으로 바둑을 망치지나 않을까. 그렇다면 단순히 큰 곳을 찾는 게 나을까. "둘 곳이 안 보입니다. 이럴 때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진정한 고수죠."(양재호9단)

유리를 승리로 이끄는 기술을 일컬어 '결정력'이라 부른다. 과거 최고의 결정력을 보여준 기사는 일본인 수샤쿠(秀策)와 중국인 우칭위안(吳淸源). 이들은 모두 기성으로 불린다. 근래에는 한국인 이창호9단이 발군의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심 끝에 떨어진 106,108은 상변을 키우려는 수. 그러나 106은 '참고도' 백1이 좋았다. 흑이 만약 2로 뛴다면 3의 붙임수가 통렬하다. 백1은 말하자면 '다음'이 있는 수다.

趙9단이 109로 밀어붙이자 후야오위는 문득 110의 공격으로 방향을 튼다. 후야오위의 방황이 감지된다. 유리하지만 승리의 길을 못찾은 채 광야를 헤매는 후야오위. 그 배후를 조치훈의 111이 위협적으로 다가선다.

순간 판은 어수선해지고 후야오위는 후회에 잠긴다. 후야오위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을 원하지만 趙9단 쪽은 113, 119 등 전력을 다해 수순을 비틀어온다. 야전으로 일생을 보낸 趙9단은 직감적으로 상대의 흔들림을 느끼고 있다. 대가 없는 승리란 없다. 그런데도 상대는 안일하게 이기려 하고 있다. 이걸 본 趙9단은 속 깊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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