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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P 필름으로 실종 장애인 찾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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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남경찰청 여성청소년계 실종아동추적반의 장덕자(51.여) 경위와 장현화(29.여)순경. 이들은 새로운 기법의 지문채취 방식을 개발해 한 정신지체장애인을 20여 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자신의 이름만 간신히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차모(42.인천시)씨는 23세 때인 1988년 여름 전주 버스터미널에서 길을 잃고 떠돌다 광주의 한 동사무소 앞에서 발견됐다. 그는 광주의 한 보호시설로 들어가면서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다. 그동안 광주와 나주의 정신요양원을 거쳐 2월 전남 화순군 중앙병원에 들어왔다.

이달 초부터 관내에서 실종아동과 무연고자를 찾아내기 위해 보호시설 일제 점검에 나선 장 경위와 장 순경은 연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차씨를 발견했다.

5월 화순경찰서 직원들이 차씨의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을 채취했으나 판독에 실패했다. 원인은 모르지만 지문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남경찰청 실종아동추적반의 장덕자 경위(右)와 장현화 순경이 OHP 필름과 라벨 용지를 이용해 채취한 지문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장 경위는 문방구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OHP 필름과 라벨 용지를 챙겼다. OHP 필름엔 신원조회서 양식을 그대로 복사했다. 라벨 용지는 가위로 알맞게 잘라 양식 크기에 맞췄다.

"라벨 용지는 뒷면이 끈적끈적해 일반 종이보다 더 선명한 지문을 뜰 수 있다는 데 착안했습니다."

장 경위는 차씨의 손가락에 지문잉크를 묻힌 다음 라벨 용지를 갖다 대 지문을 얻었다. 이렇게 확보한 지문을 투명한 OHP 필름으로 된 차씨의 신원조회서에 그대로 옮겨 붙였다.

장 경위와 장 순경은 인적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이 신원조회서를 과학수사계로 넘기고 난 뒤에도 관심을 보였다. 장 경위는 "내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주고 싶은 심정이다"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라벨 용지가 큰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라벨 용지는 손가락을 제대로 펼 수 없거나 타인이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경위는 과학수사계 직원들이 변사자들의 지문을 뜰 때 접착성 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전했다. 고가의 접착성 테이프보다 저렴한 라벨 용지를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전남경찰청 여성청소년계에선 OHP 필름과 라벨 용지를 이용한 지문채취로 무연고자 인적 사항 확인이 지난해 8명에서 올해는 24명으로 크게 늘었다. 전남경찰청은 이 같은 지문채취 방식을 전 경찰서에 확대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광주=천창환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OHP(Overhead Projector) 필름=주로 강의에 사용되는 OHP는 빛을 이용해 스크린 위에 영상을 확대해 보여줄 수 있는 광학 기기다. 필름은 이 기기에 올려서 사용하는 A4 크기의 투명한 용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용지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깨끗해, 지문을 찍으면 선명하게 확인 또는 보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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