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공구상 … 210억 털어 김포외고 세운 전병두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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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청계천에 있는 자신의 공구상 앞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포외고 전병두 이사장. [사진=강인식 기자]

김포외고 시험 문제 유출 사건으로 사회가 들끓는다. 특목고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김포외고는 특목고 지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가 학원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까지 유출됐다는 소식이 이어진 14일 오전, 서울 청계천 공구상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생업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곳은 외고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수많은 공구상 중 하나인 수표동 11의 7번지 '록스기계'의 주인은 김포외고 설립자인 전병두(59.사진) 이사장이다. 이날도 그는 얼마를 썼는지 모를 정도의 낡은 면장갑과 기름때 묻은 작업점퍼를 입고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1m55cm 단신의 그는 공구를 찾기 위해 의자를 놓고 선반을 뒤적거렸다. 그는 "죄인을 찾아 여기까지 왔느냐"며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이 학교를 세워 말썽만 일으키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전 이사장은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두 살 때다. 경기상고에 들어갔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형(64)이 맹장염에 걸려 치료비가 필요했다. 1969년 청계천에 들어간 그는 '박정희 산업화 시기'와 만났다. 안 해 본 것이 없다. 미제 물건을 팔아 돈을 벌었고, 일제 절삭기를 받아다 팔며 돈을 불렸다. 그렇게 인천 남동공단에 공장도 세웠다. 2003년 학교를 세울 땅을 김포에 마련하기 위해 그 공장을 팔았다. "자식들(딸 2, 아들 1)에게 물려준다고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도 그는 여의도에서 시내버스로 출퇴근한다. 38년 동안 이틀을 쉬었다. 신혼여행 때문이었다. 김포외고는 지난해 3월 세워졌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세상이 시끄러운데 일이 손에 잡히나.

"38년을 해 온 일인데,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재시험이든, 징계든 경기도 교육청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죄를 지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나."

-무슨 죄 말인가.

"관리를 못한 죄다."

-학교에는 안 나가나.

"일요일만 나간다. 훈수를 둘 만큼 많이 알지 못한다. 학교 운영은 교장과 선생님들이 알아서 한다. 나는 학교를 지은 사람이지 운영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돈 대주는 게 내 업무다. 수사가 이뤄지고 있으니, 모든 게 밝혀지길 바랄 뿐이다."

-문제를 일으킨 교사(이모씨, 입학홍보담당)와는 연락이 닿나.

"사건이 불거지자 종적을 감췄고, 그 후 가족과 지인에게 편지를 쓴 모양이더라. '죽고 싶다'고 했다더라. 쉰 하나면 아직 젊다. 경찰에 잡히기 전에 자수해서 죗값 치르고 작은 식당이라도 차려서 먹고 살아야지. 중학생 자녀 둔 아버지가 그러면 안 된다. 가슴이 아프다."

-학교 운영을 담당하는 교장과는 어떤 얘기를 했나.

"구체적인 건 말하기 어렵고…, 어쨌거나 (교장도) 징계는 불가피하겠지."

-남의 얘기하듯 한다.

"괴롭다. 처음에는 '절대 그런 일 없다'는 선생님들 말만 믿었다. 그런데 (수사 기관이)컴퓨터를 열어 보니 증거가 막 나오지 않나. (유출된 문제가) 13문제면, 그게 말이 되나. 떨어진 사람들 심정이 어떻겠나. 그러면 안 되는데, 요즘은 (뉴스가 두려워)신문도 멀리한다. 저녁에는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한다.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김포외고의 특목고 지정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교육청으로부터)전달된 것은 없지만, 소식은 접해 알고 있다. 내 바람도 물거품이 될지 모르겠다. 처음엔 기초학문에 200억원을 기부하려 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후회도 남는다.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이 학교를 세워 말썽이다. 건실한 서민과 중산층의 자녀들이 판사나 검사.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보다는 학생들이 더 걱정이다. 1, 2학년 학생들은 특목고에서 제외될까봐, 올 합격생들은 합격이 취소될까봐 불안해하고 있다. 선생님과 학부모는 오죽할까."

-대책은 마련했나.

"외고 교사와 학원의 지나친 밀착 관계가 문제다. 지난해 설립된 김포외고는 학교 홍보를 위해 학원을 돌며 입학설명회를 했다. 내가 알기에, 그건 외고의 오랜 관행이다. 그걸 완전히 없앨 것이다. 얼마 전 체육관도 지었다. 그곳에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입학설명회를 열 것이다. 학원과 교사의 밀접한 관계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 있다."

강인식 기자

◆전병두 이사장=김포와 연이 닿은 것은 목욕탕 덕분이다. 공구 사업으로 돈을 번 전 이사장은 김포에 목욕탕을 차렸다. 장사가 잘돼 98년에는 6000평짜리 대형 온천유원지를 열었다. 2000년 초 당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던 김포시는 '외고를 유치하겠다'고 했고 전 이사장은 "내가 해보겠다"고 했다. 2003년 땅을 샀지만, 진통이 있었다. 원래 땅 주인이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학교를 짓겠나. 부동산 투기꾼일 뿐"이라고 등기 이전을 거부했다. 법정 투쟁이 2005년에 마무리됐고, 학교는 2006년에 문을 열었다. 3년 동안 200억원이 들었고, 설립 후 10억원이 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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