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취’ 지워지는 만세대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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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만세대아파트. 윗쪽으로 이 아파트를 지어 사원들에게 저렴하게 분양해준 현대중공업의 선박건조장이 보인다. [울산시 제공]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원복지 사업중 으뜸으로 꼽혀온 울산시 전하동 일산아파트(일명 만세대아파트)의 재건축사업 시공사 선정에서 현대건설이 연이어 탈락, ‘현대’의 자취가 지워지고 있다.

만세대아파트는 1983년 정 명예회장이 현대건설에 지시해 건립한 5층 규모 3409가구의 아파트.

당시 시중가보다 30%쯤 저렴한 분양 가격에다 융자까지 알선해주며 파격으로 전량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에게 분양된 현대중공업의 사원소유 사택단지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실제 1만 세대보다 적은 규모이지만 정 명예회장이 “사원들에게 1만세대의 아파트를 지어주겠다”고 한 뜻을 반영해 ‘만세대 아파트’로 불렸고 이는 우리회사의 사원복지 혜택의 상징으로 꼽혀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사연을 간직한 유일한 자취로 남아있는 건물벽면·준공기념비의 시공사 명칭 ‘현대건설’이 내년쯤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1, 2, 3지구로 나뉘어 추진되고 있는 재건축사업 시공사 선정투표에서 지난 2월 3지구 입주민들이 대우건설을 선정한데 이어 지난 11일 1지구 입주민도 현대건설 대신 대림건설을 선정했다. 내년 2월쯤으로 예상되는 2지구 시공사선정이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연거푸 고배를 마신 충격이 너무 큰데다 2지구의 경우 1, 3지구보다 훨씬 더 심한 건축가격 덤핑경쟁이 예상돼 선정 경쟁에 아예 불참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특히 1지구 탈락에 대해 현대건설측 관계자는 “만세대 아파트가 생겨난 유래를 보나 아직도 입주민의 46%가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범현대가’ 임직원들이란 점을 감안해 적자를 각오하고 수주전에 뛰어들었다”며 아쉬워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시대가 변했고 입주민들의 사유재산이 된지 오래여서 관여할 입장은 아니다”면서도 “만세대 등 ‘현대’라는 이름의 아파트들이 재건축 바람을 타고 하나 둘 다른 이름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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