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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씨 '유서 대필' 16년 만에 또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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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신부)는 13일 전원회의를 열고 1991년 발생한 강기훈(43)씨의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국가의 재심을 요구하는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김갑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91년 분신 자살한 고(故) 김기설씨의 유서는 김씨 본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회신을 보내왔다"며 "검찰과 법원은 피해자와 가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4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로부터 진실 규명 신청을 받아 국내 7개 사설 감정기관을 통해 유서의 필적이 김씨 본인의 것이 맞다는 소견을 확보한 데 이어 국과수로부터도 같은 결과를 통보받았다. 국과수는 당시 김씨의 유서가 본인이 아니라 강씨의 필체라고 판정해 강씨 유죄 판결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했다.

당시 수사팀들은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시 수사검사였던 남기춘 북부지검 차장검사는 "국가기관인 국과수의 감정과 여타 정황을 포함해 내린 결론을 이제 와서 뒤집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서에 대한 필적 감정을 맡았던 김형영(68) 전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필적을 비교한 문서가 다른 만큼 예전 결론을 뒤집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당시 감정 결과를 확신하나.

"소신껏 감정했다. (당시 감정 결과를) 지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획순.필체 구성을 분석하니 약 75%가 동일했다. 70% 이상이면 동일 필체로 본다. 물론 10만 명 중에 우연히 필적이 유사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결과를) 대법원도 인정하지 않았나."

-국과수가 재감정 결과 유서가 김씨 필체라고 했다.

"당시 결론을 뒤집지는 못한다. 91년엔 강씨의 자술서와 김씨의 유서를 비교했다. 재감정은 (강씨 측에서) 1~2년 전 제출한 김씨의 메모와 유서를 비교했다. 방법이 다르다."

천인성 기자

◆유서 대필 사건=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의 유서를 동료 강기훈씨가 대필해준 사건. 김씨는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분신.자살했다.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인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써 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당시 국과수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 것이라는 의견을 냈으며, 대법원은 92년 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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