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합당 합의' 당이 뒤집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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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4년 만에 과거 '새천년민주당'으로 회귀하는가 싶던 대통합민주신당이 또 다른 방향으로 돌고 있다.

신당의 정동영 후보, 오충일 대표가 민주당 이인제 후보, 박상천 대표와 12일 만나 서명한 합당 및 후보 단일화 관련 '4자 선언문'이 하루 만에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선언문에 직접 서명했던 오충일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합당 조건을 재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4자 회동 결과를 통합의 정치적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지지한다"면서도 "통합 조건에 대해 통합협상위원회를 구성해 다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당의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상희.양길승 최고위원 등 시민사회 출신과 김효석 원내대표, 정균환 최고위원 등 민주당 탈당파, 이미경 최고위원 등이 참석했다.

4자 합의에 따라 민주당이 향후 당 의사결정 기구의 50%를 차지할 경우 상대적으로 시민사회 측과 민주당 탈당파는 가장 큰 손해를 볼 것으로 분석돼 왔다. 그 때문에 이들은 회의에서 "총선용 합당이 새로운 정치냐"며 강력 반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신당은 정동영 후보의 밀어붙이기식 합당 선언→당내 각 세력의 반발→대선 후보와 당내 각 세력의 충돌 위기로 이어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신당은 통합 전당대회를 총선이 끝나는 내년 6월로 정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공천권의 절반을 행사하지 않겠느냐는 의구심까지 보태져 "대선을 포기하고 총선만 바라보는 정당이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선언문을 뒤집은 당 지도부의 결정에 대해 "4자 선언의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정 후보 측 최재천 대변인이 전했다.

정 후보 측은 "이미 합의한 큰 틀이 다소 조정되는 선에서 합당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그러나 신당의 혼란상은 오히려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의원 등 친노파 의원 20여 명은 이날 모임을 열고 "박상천 대표를 지도부로 하는 체제에 공천권을 주기 위해 전당대회를 총선 후로 미룬 결정은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범여권 진영의 위기"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당 의장, 장영달 전 원내대표 등 중진 의원들도 긴급 회동해 합당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했다. 시민사회 세력 측은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탈당을 포함한 집단행동까지 예고하고 있다.

한 친노파 의원은 "정 후보는 민주당과의 합당을 홈런을 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보기엔 1루에 나가 있다 내야 땅볼로 아웃되는 게 아닌가 싶다"며 당의 대선 후보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신당은 일단 통합협상위원회를 꾸려 민주당과 재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지지율 3위 추락'이라는 위기를 뚫기 위해 민주당과의 합당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정 후보 측과 내년 총선에서의 이해를 따지는 당내 각 세력이 양보 없이 맞설 경우 신당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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