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떡값 의혹, 증거 공개가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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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이 결국 특검으로 넘어가게 됐다.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을 차지하는 신당의 정동영, 민노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등 3당 후보가 어제 특검법안을 오늘 중 발의키로 하고 정기국회 회기인 23일까지 특검법을 처리하자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가 제시한 의혹의 중심에 검찰 수뇌부가 있는 만큼 검찰 수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특검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 제시 없이 의혹만 제기되고 있는 상태에서 특검부터 논한다는 사실 자체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가장 우선이 돼야 할 일은 김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확보하고 있다는 모든 비리 내용과 증거를 전면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검찰에 성실한 수사를 촉구하는 게 원칙이고 순서다. 지금처럼 상황에 따라 찔끔찔끔 의혹을 꺼내 놓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특히 대선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 다음 철저한 조사를 통해 조속히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검찰 몫이다. 검찰이 이미 수사에 착수한 만큼 이번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사실관계를 밝혀내길 기대한다. 총장 내정자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거론된 상황인 만큼 이는 검찰 전체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검찰 수뇌부는 스스로 수사 지휘선상에서 물러나 엄정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수사의 공정성과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고도 의혹이 풀리지 않을 경우 특검을 도입해도 늦지 않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