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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통수가 죽었다고 했다.
신촌역 앞에 널브러져 있던 통수를 뒤늦게 현장으로 돌아온 도끼가 들쳐업고 병원으로 갔는데 그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고 했다.
사인은 타박상에 의한 뇌출혈.건영이가 업어치기로 통수를 내동댕이친 것이 통수의 머리가 길바닥의 모서리 같은데에 잘못 맞은모양이었다.
건영이는 그때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통수가 기절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녀석들과의 싸움에만 몰두했다고 했다.경찰서의 형사는,사람을 죽일 의사는 없이 실수로 죽게한 죄 보다는 죽어가는 사람을 내버려두고 달아나는 죄가 더 크다고 가 르쳐 주었다. 건영이를 제외한 악동들 다섯명은 혐의를 벗고 그날 밤 늦게부모들에게 인계되었다.나는 건영이를 남겨두고 경찰서 건물을 빠져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어머니는 한순간이라도 빨리 거기를 벗어나야 한다면서 나를 잡아 끌었다.
우리가 건영이를 다시 본 건 일주일도 더 지나서였다.서대문 구치소로 넘어갔다고 해서 면회를 간 거였다.
아침 일찍 가서 면회를 신청하면 오후에나 면회가 된다고 해서우리는 학교를 하루 빠지기로 하였다.
건영이를 위해서라면 하루가 아니라 한달이라도 학교를 쉴 수도있다고 나는 생각했다.지금은 그래봐야 건영이에게 특별히 도움이되지 않으니까 그러지 않는 거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과연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우리의 번호가 마이크에서 흘러나왔다. 우리는 23번 면회실로 가서 기다렸다.조금 있으니까 건영이면회실의 저쪽 문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를 보고 씨익 웃었다.그러나 우리는 건영이를 보고 웃어주지 못했다.
『웬일이야,학교들은 안가구…?』 건영이가 밝게 말했다.
『미안해.너한테 할 말이 없어.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할게.』 우리 중의 하나가 건영이에게 그랬다.
『아냐.그냥 재수없었던 거지 뭐.통수라는 녀석은 나보다 더 재수가 없었던 거구.학교에선? 괜찮은 거지…?』 『아직 뭐 특별한 말은 없는데… 선생들도 우리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안잡히나봐.차라리 학교에서 짤리기라도 하면 너나 매일 면회올 수 있을텐데 말이야.』 『미 친소리… 너희가 잘돼야 나도 좀 붙어 먹지 안그래?』 『안은 어때? 견딜만 한 거야?』 『통수를 생각하면 나야 다 호강이다 싶어.…그 친구에게 또 병든 어머니가 있더라니까.』 『너나 생각해.너만 가지구두 골치 아니냐구.』 우리중의 하나가 쏘아붙였다.
『아냐.여기 들어와서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많은생각들이 변하더라구.』 우리는 건영이에게 무언가 뜻있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그건 우리가 건영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일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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