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국가경쟁력 순위 게임의 허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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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21면

국가경쟁력은 한 나라 또는 한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 국가 또는 경쟁 기업에 비해 보다 많은 부(富)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근년 들어 중국과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로 회자된다. 저임 저가의 풍부한 노동력과 서비스로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선진경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7~2008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중국은 34위, 인도는 48위였다. 브라질은 72위, 러시아는 58위로 ‘친디아(Chindia)’니 ‘브릭스(BRICs)’니 하는 신조어들이 무색하다.

반면 엄청난 무역적자 속에 성장이 주춤한 미국이 전년의 6위에서 1위로 뛰어올랐다. 순위 매김이 잘못되지 않았느냐는 공개 질의에 WEF의 조사책임자가 서둘러 해명을 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저축보다 투자가 많기 때문이며 낮은 저축은 경쟁력과 별 관계가 없다고 했다. 높은 투자율은 미국에 투자하면 그만큼 이익이 많이 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곧 미국의 경쟁력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미국 기업들이 기술혁신과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세계 최상의 대학시스템과 산학협동체제가 거시경제적 불균형에서 오는 약점들을 극복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이런 관점이라면 미국의 국가경쟁력은 해마다 요지부동 1위여야 한다. 한 해 사이에 순위가 왔다 갔다 할 수 없다. 더구나 몇 년 동안 1, 2위를 도맡아 왔던 핀란드는 6위로 떨어졌다. 인도와 브라질은 6단계가 떨어진 반면 한국은 12단계나 뛰어올랐다. 해마다 순위가 널을 뛰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쟁력은 정(靜)적인 것이 아니고 이동하는 표적과 같다. 따라서 조사방법 또한 꾸준히 조정을 거듭하고, 특히 올해에는 새 모델을 적용했기 때문에 순위 변동이 컸다는 변명도 가능하다. 곤혹스러운 것은 영국의 경우다. 영국은 전년 순위가 10위였다. 전년도 경쟁력을 새 모델에 적용해 본 결과 영국의 전년도 순위는 2위로 나왔다. 같은 새 모델에 의한 올해 순위는 9위다. 1년 새 순위가 7단계 급락한 셈이 된다.

한국의 널뛰기는 더욱 곤혹스럽다. 한국은 2004년 전년의 18위에서 29위로 11단계 급락했다가 2005년에 17위로 12단계 뛰어올랐고, 다시 2006년에 23위로 6단계 떨어졌다가 올해 11위로 12단계나 뛰어올랐다. 순위 도약의 기여 요인으로 고교 진학률 세계 1위, 광대역 인터넷망 2위, 인터넷 사용인구 6위, 낮은 인플레와 저금리 등 거시경제적 안정 8위, 기업혁신과 산업 클러스터 8, 9위 등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들이 어찌 어제 오늘의 현상인가. 1년 새 순위 널뛰기의 설명으로는 역부족이다. 한국 경쟁력의 약점으로 조직범죄(50위), 범죄 폭력(40위) 등 치안불안이 지적된 것 역시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새 방법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준해 경제발전 단계별로 요소투입주도형(2000달러 미만), 효율주도형, 혁신주도형(1만7000달러 이상) 경제로 나누고 가중치를 적용한다. 따라서 1인당 GDP가 낮은 국가들은 상위 랭킹에 들 수 없다. 새 방법으로 순위를 매기면 톱 10국가는 그대로 톱 10이며 앞으로 큰 변동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프랑스가 18위인 것은 그렇다 해도 이탈리아가 48위인 것은 통념상 이해하기 힘들다.

113개 지표의 측정과 가중치 산정이 자의적이고 국가경쟁력 정의에 관해서도 아직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복잡한 경제현실을 A매치경기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매기듯 할 수는 없다. 서로의 장단점을 비교해 부족하고 잘못된 점은 보완을 유도하는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순위 변동에 일희일비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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