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소비자의 권위"-소비자主權 사회 재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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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회과학에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이제하나의 중요한 이론.방법론으로 자리잡고 있다.문화연구의 공헌은문화를 지배이데올로기의 전달로 간주하는 고전적 명제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문화가 갖는 다양함.복잡함 속에 서 대중의 능동적인 수용과 대응의 실천에 주목한 데 있다.즉 수동적인 존재로만 인정되던 대중(수용자.시청자)의 문화적 실천에 주목하고 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행하는 실천에 대한 접근을 통해 대중의 위치를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정립시킨데 있는 것이다.
최근 서구의 사회과학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중을 다양한 맥락에서「소비자」로 부르는 경향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따라서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상품이나 서비스구매자 외에도 TV시청자.극장 관객.스포츠 관중.병원환자, 심지어 세금납부자까지 소비자라 부르게 되는 상황이다.이러한 개념의 변화는단지 명칭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사회적 개념의 변화는 사회적 현실의 변화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이 책은 문화연구적 전통 맥락에서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소비자의 성격과 의미를 사회변화 과정과의 관계속에서 탐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비자에게 권위가 부여되고 사회적.문화적 삶에서 권위가 생산자(창작가.문화산업.국가)로부터 소비자로 이전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그리고 문화와 공공서비스 소비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이 책은 소비자,즉 시민의 문화적 지위 향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이는 문화적인 엘리트주의와 전문가들만이 갖는 권위에 도전해 소비자에의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움직임으로 이해될 수 있 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최근 집중적으로 다학문적(多學問的)종합연구를 해온 영국 랭커스터 대학의「문화가치연구센터」가 내놓은 일련의 시리즈중 하나다.이 센터는 이미 지난 91,92년에『기업문화』『기업문화의 가치』라는 저 작들을 통해 문화와 생산자 측면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등장과 관련해 연구한 바 있으며,이번에 문화의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의 권위의 이전이라는 테마와 더불어 소비자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학문적인 연구 결과라는 특성상 논의의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는 단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어떤 필자들은 소비자 권위의 추상개념이 현대「소비자 사회」에서 이제 막실현되기 시작함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 이에 완전 히 동의하지 않고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의 우위를 인정해야 한다고주장하는 필자들도 있다.
어쩌면 이는 소비자 권위 개념의 적합성 여부에 대한 문제를 이제 막 제기한 입장으로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또한 소비자에 대한 강조가 80년대 이후 공익과 사회복지를 대신해 신보수주의의 정치적 수사로 즐겨 사용되었던「소비자주 권」개념과 맞물려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은폐할 수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소비자가 단순히 피동적이고 수동적인「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문화적 삶을 결정하는 힘과 권위를 갖게 되고 그것이「소비자사회」의 등장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새로운 문 제 제기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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