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러·일전쟁 100돌에 본 한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올해는 러시아와 일본이 극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전쟁(러.일전쟁)을 벌인 지 1백년이 되는 해다. 러.일전쟁은 1904년 2월 9일에 발발해 1905년 9월 5일 미국 포츠머스에서 미국의 중재로 강화조약을 체결하기까지 20개월을 끈 국제전쟁이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 국가, 특히 동북아 국가들에 러.일전쟁 1백주년이 되는 올해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당시 열강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조류를 타고 한반도를 향해 밀려왔다. 러시아의 경우 1884년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거문도 사건, 민비시해, 아관파천 등 구한말(舊韓末) 역사의 고비마다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중국에 이어 러시아마저 1904년의 러.일 전쟁에서 일본에 패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일본의 독보적 우세가 결정나게 되고, 1905년 포츠머스 조약의 체결로 한반도 침략의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한 일본은 같은 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을 강요하고 조선의 주권을 빼앗음으로써, 조선은 긴 예속의 시대를 경험하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 모르나, 과거의 역사를 낳은 지정학적(地政學的) 여건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반도가 안고 있는 문제와 처해 있는 상황은 그 본질에 있어 1백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북문제가 해결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가 유동적이며, 이곳을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도 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지난 1백년간 우리 민족이 겪어온 파란의 역사에서 자강(自强)만이 국권(國權)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얻어 이제 세계 12위의 경제력을 갖춘 민주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민족 내부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주변 열강과 협조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 지역 공동의 번영을 확보할 협력의 틀도 아직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은 오늘날 한반도가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20세기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지난 세기의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21세기에는 '호혜와 상생의 구조'로 바꿔야 한다. 중진국으로 부상한 우리는 주변 국제환경을 대립이 아닌 협력 구도로 만드는 창의적인 외교전략을 펼쳐야 한다.

또한 우리가 안고 있는 내부문제는 다각적.다층적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경쟁력을 제고해 일류 경제를 이룩하면서 안보를 지키고 평화를 이루는 다중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히 북한도 반미(反美)를 위한 민족공조가 아닌,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틀 형성을 위한 공조에 동참해야 한다. 남북한은 민족문제의 해결뿐 아니라 지역과 국제사회의 공생(共生).공영(共榮) 노력에 대한 합심을 통해서만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평화.번영정책은 남북한은 물론 동북아 지역의 협력을 지향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한 선결과제인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구성된 6자 대화는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뿐 아니라 나아가 주변 국제환경을 협력 구조로 전환시켜 나가는 전기가 될 수 있다.

6자회담은 핵 문제의 해결을 넘어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북아 협력의 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협력체 창출과 평화관리체제 구축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적이거나 병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남북한과 주변국을 망라하는 동북아 협력은 안보.에너지.어업.환경 등의 분야에서 시작할 수 있다. 석탄과 철강의 공동관리에서 출발해 공동시장, 단일통화를 거쳐 통합으로 세계의 중심축을 가꿔나가는 유럽의 행로(行路)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러시아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자는 역사가 이를 처벌한다'는 격언이 있다. 러.일전쟁 발발 1백주년을 맞아 우리는 1백년 전의 역사를 거울삼아 거시적인 청사진을 갖고 우리가 처해 있는 역내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감으로써 새로운 1백년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정태익 駐러시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