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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이회창 방지법' 나올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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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한 2007년 11월은 10년 전인 1997년 9월을 그대로 빼닮았다.

97년 9월 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선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씨와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오찬 회동이 있었다. 탈당설이 도는 이인제씨를 붙잡기 위한 담판 회동이었다. 오찬 첫머리에 이 전 지사는 "대표님(이회창)께서 집으로 찾아오실까 봐 겁났다" 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가 집까지 찾아오면 자신의 운신이 곤혹스러우니 피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이 전 지사는 아들 병역 문제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폭락하자 탈당과 독자 출마를 사실상 결정한 상태였다.

며칠이 지난 9월 12일 밤 이회창 후보는 이 전 지사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이 전 지사의 탈당 선언을 하루 앞두고서다. 하지만 이 전 지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부인 김은숙씨와 지방으로 잠적했다. 이 전 지사와 이 후보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다음 날인 13일 나타난 이 전 지사는 여의도 맨하탄호텔에서 "정치적 둥지였던 신한국당을 떠나는 아픔을 참고 시대의 소명과 국민의 부름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며 탈당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10년2개월이 흘렀다. 2007년 탈당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이명박과 이회창'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이회창 후보가 은신하는 역할이다.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7일 아침 이회창 후보의 서빙고동 자택을 찾아갔다. 10년 전 이인제 전 지사를 붙잡으려 했던 이회창 후보는 부인 한인옥씨와 함께 잠적해 이명박 후보의 방문을 피했다. 5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회창 후보는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한나라당을 떠나는 처절한 심정이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선 이 길밖에 없다"며 탈당했다.

10년 전 이 전 지사의 탈당 소식에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한 정치인'이라고 맹비난했던 이회창 후보는 7일 출마 회견에서 "내 (출마) 결심과 행동은 경선 불복(방지)의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국회는 97년 이인제 전 지사의 탈당 이후 7년 만인 2004년 '경선에서 진 사람은 대선 후보로 등록할 수 없다'는 선거법 규정을 신설했다. 소위 '이인제 방지법'이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이 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회창 방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가.

서승욱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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