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안에 세 선수…링 밖에 한 선수…기묘한 4자 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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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 정국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이명박-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간 양자 대결 구도로 예상됐다. 여기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뛰어들면서 '3자(이명박-이회창-정동영) 구도' 또는 그 이상의 다자 구도로 전환되는 모양새다.

장외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관망하고 있다. 그는 보수진영에서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전 총재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것이기에 장외주 대접을 받고 있다.

이들 모두 한국 정치권에서 일정한 세력을 갖고 있는 주주들이다.

4인의 행보는 따라서 12월 대통령 선거는 물론 내년 4월 총선의 향배에까지도 영향을 준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한 해 뒤에 있을 총선 계산법이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2007년 대선은 1987년 대선 때와 유사한 면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후보 간 단일화 등 연대의 정치보다 분열의 정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집권이 어려워도 이듬해 총선을 노리고 각 후보가 뛰는 양상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실제 87년 대선 때 대구.경북의 노태우, 부산.경남의 김영삼, 호남의 김대중, 충청권의 김종필 다자 대결 구도가 펼쳐졌고 이들 간 대결은 88년 총선 때 재연됐다.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보는 한나라당 내부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이 후보의 절대 강세가 역설적으로 이 전 총재의 출마 상황을 낳았다는 시각이 많다. 이 후보가 화합에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 후보 진영이 아닌 사람들은 '총선 물갈이'에 대한 공포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장외의 박 전 대표 세력이 흩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서청원 전 대표는 "경선 때 당심에서 이긴 우리가 왜 흩어지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이 후보 측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론 갈등 이면엔 당권, 즉 내년에 총선 공천권을 확보하려는 권력투쟁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전 총재는 이명박-박근혜 진영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세력을 포섭하면서 영남권 등 동부벨트의 균열 조짐도 있다. 이달 14일께 송환될 김경준씨에 대한 검찰 수사의 방향에 따라, 또 박 전 대표의 선택에 따라 이 후보가 안정궤도로 올라서거나 이 전 총재가 추진력을 얻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경선 승복 연설을 한 마당에 이 전 총재를 지지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대신 박 전 대표가 총선 국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래저래 대선 이후 4인 실력자의 움직임에 따라 대규모 정계 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

이 후보는 새삼 박 전 대표를 끌어안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게 '집권 뒤 국정의 동반자'란 제의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범여권 상황도 복잡하긴 매한가지다.

다자 대결 구도가 되면서 정 후보가 3위 후보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때와 같은 후보 단일화의 추동력을 잃고 각개약진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많다.

그러나 87년 체제와 달리 후보들이 고정된 지역 기반이 약하다는 점에서 총선 국면까지 그들의 영향력이 유지될지는 미지수란 주장도 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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