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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케이블 ‘TV영화’ 르네상스 시대 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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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초신 감독의 ''색시몽''에서 여성 탐정으로 활약한 세 여주인공 김지우·서영·강은비 (앞에서부터).

지난주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주간 인기 검색어 4위를 차지한 ‘색시몽’. 그 뒤를 이은 건 MBC 판타지 사극 ‘태왕사신기’다. 드라마·영화를 통틀어 전체 순위 20위권 내에 든 것은 이 두 작품이 전부다. ‘색시몽’은 케이블·위성 채널CGV가 내놓은 ‘몽정기’ 정초신 감독의 4부작 TV영화다. 제작비 400억 원이 든 대작 ‘태왕사신기’를 누르고 넷심을 사로잡은 ‘색시몽’의 제작비는 ‘태왕사신기’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태왕사신기’의 시청률은 30% 안팎이고 ‘색시몽’의 시청률은 2% 안팎이다. 제작비·지상파 프리미엄을 고려한다면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준 셈이다. 이렇게 드라마 같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한 틈새장르 ‘TV영화’ 부흥기가 열리고 있다.

◆TV영화에 뛰어든 영화 채널

영화 감독 및 제작진을 케이블로 끌어들여 ‘TV영화’를 가장 먼저 내놓은 건 OCN이다. 2004년 에로 영화로 이름을 날린 봉만대 감독의 2004년 6부작 TV영화 ‘동상이몽’(2004년)이 첫 작품이다. 당시 케이블 기준으론 거금인 15억원을 쏟아 부었다. 평균 시청률 2.9%을 기록하며 성공하자 OCN은 ‘가족 연애사’, 미스터리 스릴러 ‘코마’, 16부작 ‘썸데이’와 ‘키드갱’, 4부작 ‘이브의 유혹’에 이르기까지 7종의 TV영화를 내놨다.

채널CGV는 올 초 4편짜리 오리지널 영화 ‘18’(에이틴)을 내놓으면서 경쟁에 뛰어들었다. 채널CGV관계자는 “리얼리티 드라마나 페이크 다큐멘터리, 드라마도 만들어보는 등 여러 가지 시도 끝에 내린 결론이 TV영화”라며 “영화적인 새로움을 원하는 영화 채널 시청자들에게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블루오션을 열다

후발주자 채널CGV의 물량공세가 무섭다. 17일 방송을 시작할 10부작 사극 영화 ‘8일’에 역대 케이블 최고 수준인 편당 4억원을 투입했다. 시청률·광고수익만 본다면 위험한 투자지만 부가 수익이 짭짤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OCN의 경우 ‘코마’ 판권을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TV를 통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 판매했고, ‘키드갱’은 일본 월드제이 엔터테인먼트에 DVD와 TV 판권을 팔았다. ‘이브의 유혹’은 위성DMB, 스카이라이프 페이퍼뷰, 인터넷 VOD 등 다양한 채널로 판매됐다.

온미디어 이영균 홍보기획팀장은 “당장의 수익성보다 장기 수익 및 자체 제작 역량 강화에 초점을 둔다”며 “TV영화는 장편 시리즈물에 비해 편성하기 부담스럽지 않고 한 편씩 끊어지는 맛이 있어 판매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영화제작사 입장에서도 케이블 TV영화는 블루 오션이다. ‘이브의 유혹’ 제작사 화인웍스의 마케팅 관계자는 “어느 채널을 통해 보여주느냐의 문제일 뿐, 궁극적으로는 콘텐트의 질과 양이 관건이 될 것이기에 케이블도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최근 영화 제작사들이 드라마로까지 콘텐트를 확산하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영화’ 그 자유로움

‘영화’라는 이름을 붙이면 방송 심의에서도 조금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브의 유혹’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그녀만의 테크닉’ 편에선 TV영화 전문 배우로 자리잡고 있는 서영의 가슴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베드신이 나온다. ‘색시몽’도 스와핑 베드신 등 다소 파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인터넷에는 자극적인 장면만 편집한 영상물들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작품 전체로 본다면 그저 벗기기만 하는 에로 비디오와는 다르다.

‘색시몽’을 연출한 정초신 감독은 “케이블 프로그램들이 보여주기에만 급급해 스토리나 구성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성(性)이란 소재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려 했다”고 밝혔다. 방송위원회 심의2부 김양하 부장은 “아무래도 영화는 예술적 표현이란 측면에서 좀 더 자유롭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가슴이 노출됐다 해서 제재하는 게 아니라 내용 흐름 전개를 고려해 심의를 하는 데다 케이블이란 채널의 특성도 감안한다. OCN의 TV영화는 지금껏 단 한번도 심의에 걸린 적이 없다.

◆감독, TV영화로 실험하다

양대 영화채널의 대표 TV영화 ''직장연애사<左>'' ''8일''의 포스터

여태 가장 많은 TV영화 작품을 만든 건 시즌 2까지 내놓을 정도로 인기를 얻은 ‘가족연애사’의 김성덕 감독이다. TV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과 ‘세 친구’에서 시작해 ‘은장도’ ‘보스 상륙작전’ 등 영화도 연출한 그의 새 TV영화 ‘직장 연애사’는 9일부터 전파를 탄다.

김 감독은 “지상파에서 섹시 시트콤을 만들기엔 제약이 커 케이블에서 영화 기법으로 연애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작 여건은 지상파나 영화에 비해 많이 떨어지지만 “아이디어로 한계를 극복한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2005년 발표한 ‘가족 연애사’는 최초의 HD 영화다. 2년 전만 해도 방송에선 다루기 어려울까 봐 피하고, 영화에선 ‘방송 촬영하는 것 같아 창피하다’며 마다하던 HD 장비를 공짜로 쓰다시피 했단다. 이제는 방송은 물론 영화에서도 앞다퉈 HD를 도입하는 실정이다.

창작의 자유로움도 케이블의 매력이다. 그는 “지상파방송은 타협해야 할 일이 많고 제약도 많은데다 시청자·네티즌 입김에 대본도 수시로 바뀌는 반면, 케이블은 사전제작이 가능하고 감독 소신대로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드’를 꿈꾼다

미국에서는 영화제작자로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가 ‘CSI’ 시리즈를 만들어 크게 히트시켰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영화적 역량을 총동원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TV물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도 2008년 상영 예정작 SF드라마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제작에 뛰어드는 등 유력 감독·제작자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내고 있다. 영화는 고급스럽고, TV는 저급하다는 편견이 깨지는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 TV영화는 아직 극장영화에 견주기엔 갈 길이 멀다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을 연출한 박종원 감독은 “에센스만 집어넣는 게 영화라면, 여러 인물에게 다양한 모습을 부여해줄 수 있는 게 TV영화”라며 “한편으로 끝나는 영화보다는 ‘미드(미국 드라마)’같은 연속극이 21세기적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원한 제국’ 등을 연출한 충무로 출신이다. 박 감독은 “우리나라도 ‘프리즌 브레이크’나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작품을 만들 역량은 있는데 시스템이 아직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대기업이 케이블에 투자하면서 우리나라도 점차 미국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가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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