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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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성식이 오빠가 왜 죽었는지 알아요?』 나는 성미라는 아이와말하기 위해서 걸음을 멈췄다.
앞서가던 악동들이 저만치에서 뒤돌아서서 나와 성미쪽을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깡패같은 놈들이 성식이를 못살게 굴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그런다고 자살을 해?… 그게 맞는 거야?』 성미가 고개를 숙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그애가 다시 고개를 드는데 눈이 젖어 있었다.뭔가 사연이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뭔지 모르지만… 나중에 이야기해줘.내가 전화할게.』 『…꼭요.』 다음 월요일이었다.5교시가 끝났을 때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고 해서 교실 밖으로 나가봤더니 성미였다.
『장례식 다 끝났구요.오늘부터 학교에 오는 거예요.』 성미가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우리학교…?』 『그래요.2학년이요.』 『그랬구나.난 다른 학굔지 알았지.』 성미는 얼굴이 조금 창백해 보이긴 했지만 화색이 돌고 그러면 귀여울 계집애였다.나는 사실 여동생이 있는 놈들을 무지 부러워했었다.
7교시를 마치고 운동장 한구석의 벤치로 갔다.
성미는 무슨 책을 읽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가방에 집어넣었다. 『말해봐.정말 그래서 자살까지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 『달수오빠는 쌈 잘한다면서요….』 『누가 그래…?』 『성식이오빠가요.성식이오빠는 나한테 걱정하지 말라면서요.깡패들이 정못되게 굴면 달수오빠한테 말할 거라구 그랬거든요.그러면 다 해결해줄거라구 그랬거든요.』 『어떤 놈들이지? 대체 어떻게 했다는 거야…?』 『오빠는 매도 많이 맞았어요.돈도 매일 빼앗기구요.밤 늦게까지 집에 안보내주구요.막 나쁜 짓도 시키구요.』 『그런데 당하고만 있었어? 집에서도 모르구?』 『아뇨.나중엔 아빠랑 엄마도 다 아셨어요.그래서 엄마가 몇번씩이나 선생님도 만나고 나중엔 아빠가 경찰서에 가서 의논도 하고 그랬는데요….
그래도 방학하기 며칠 전에는 형사들이 그 깡패들을 다 잡아갔다구 그랬는데….그래서 오빠가 경찰 서에 가서 그동안에 당한 걸다 써주구 그랬거든요.
그랬는데 개학하고 학교에 갔다오다가 그 깡패들한테 또 붙잡힌거예요.』 나는 사태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양아치들이란 참으로 어쩌지 못할 물건들이었다.
선생님들이야 학교 밖에서의 일에까지 나설 리가 없었다.설사 나선다고 해도 봉변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거였다.
그렇다고 전투경찰들이 대대적으로 나선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었어.정말이야.』 『싸움이 더 커지면 그것도 걱정이라구 오빠가 그러기는 했어요.저기요… 성식이오빠 일기장이 있거든요… 볼래요?』 『볼게.읽어보구 내가 좀 생각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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