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별났다…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독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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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피아니스트 랑랑이 독주회 후 1000여 명의 팬에게 사인을 해주던 중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반짝이 의상을 입고 나온 피아니스트 랑랑(25)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앙코르 곡으로 선택했다. 폭포수처럼 음표가 쏟아지는 이 곡에서 피아니스트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손가락을 과시한다. 랑랑은 음표들을 거의 뭉그러뜨려 벌의 날개가 윙윙대는 분위기만 전달했다. 짧은 음들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도저히 한음 한음 들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템포였기 때문이다.

3일 저녁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그의 독주회에서 이 앙코르는 랑랑의 연주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줬다. 그는 연주곡들의 빠른 부분은 더욱 빠르게, 느린 부분은 더욱 느리게 해석했다. 고전적이고 엄격한 스타일의 모차르트 소나타가 그의 손을 거쳐 드라마틱하게 변신했다.

앙코르 직전에 연주한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은 랑랑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곡이다. 그는 어린 시절 만화 영화 ‘톰과 제리’에서 톰이 이 곡을 치는 것을 보고 피아노를 치게 해달라고 졸라 음악을 시작했다. 연주는 피아니스트들의 무겁고 점잖은 터치보다는 고양이 톰이 장난치듯 과장하며 치는 편에 가까웠다. 특유의 리듬을 강조했고 폭발적인 힘을 과시하는 듯 피아노를 내려쳤다. 이 또한 파격이었다.

랑랑은 기존 음악계가 낯설어하고 청중은 열광하는 연주자의 탄생을 알렸다. 독주회를 본 한 원로 피아니스트는 “3년 전 랑랑의 내한 연주를 듣다 중간에 돌아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연주회보다 재주를 과시하는 서커스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쇼맨십이 지나치다”는 평도 나왔다.

반면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전석을 매진시킨 팬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환호를 보내며 록 콘서트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팬 사인회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랑랑은 독주회 전 인터뷰에서 “클래식 청중의 수를 늘리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비난을 무릅쓰고 NBC의 ‘투나잇 쇼’,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클래식 스타로 거듭났다.

연주를 모두 마친 랑랑은 무대 위 피아노를 향해 박수 치는 시늉을 했다. ‘모든 공을 피아노에 돌린다’는 의미의 이 제스처에 청중은 다시 한번 재미를 느꼈다. 이 피아니스트는 대다수 청중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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