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일본 형무소] 가라오케에 방마다 TV갖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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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달 31일 오전 9시10분 요코하마(橫濱) 형무소 내 실내 체육관. 머리를 빡빡 깎고, 회색빛 옷을 입은 수형자 1천2백여명이 줄맞춰 들어와 철제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엔카가수 김연자(金蓮子.45)씨의 위문공연을 보기 위한 것이다.

金씨는 "17년 전 일본에서 데뷔한 이후 조금이라도 일본 사회에 되돌려주자는 취지에서 매년 1~2차례 형무소 위문공연을 해왔다"고 말했다. 남편인 재일동포 2세 김호식(金好植.62) 센슈(千秋)기획 사장이 30년째 이끌고 있는 재즈그룹 멤버 20여명과 함께 온 金씨는 이날 1시간여 동안 보조가수 2명과 함께 한국.일본 노래를 10여곡 불렀다.

교도관 30여명이 곳곳에서 지키는 긴장된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형자들은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부는 등 모처럼의 '바깥 공기'에 즐거워했다. 60대 일본인 수감자는 "외국인이지만 처음 형무소에서 유명 가수의 노래를 들었는데, 마음이 새롭게 씻겨진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한국인 수형자는 "한국교도소에선 대통령 취임식 정도에만 위문공연이 있는데, 일본 형무소에서 한국인 가수의 노래를 들으니 감격스러웠다"고 밝혔다.

형무소 곳곳에는 이날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2주 전부터 붙여 있었다. 구와마 다케시(間猛) 형무소장은 "공연 소식이 전해지면 수형자들의 마음이 밝아져 사고가 줄어들고, 공연 후에도 분위기가 1주일 이상 간다"고 말했다.

요코하마 형무소 건물 색깔은 환한 베이지색이었고 디자인도 산뜻했다. 마치 문화회관 같았다. 구와마 형무소장은 "1855년 설립된 이후 내내 목조건물과 빨간색 벽돌집이었으나 4년 전 신축하면서 형무소라는 인상이 없도록 해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을 들어주었다"고 설명했다. 부지 6만2천여평에 숙식동 4개, 공장 1개, 대형 실내 체육관.운동장 등을 갖춘 이 형무소의 수용 정원은 남성 1천2백여명. 그러나 실제 수형자는 1천5백1명이었다. 구와마 소장은 "정부의 범죄단속 강화로 전국 형무소의 평균 수용률이 1백20%에 이른다"고 말했다.

수형자의 방은 모범수 독방.공동방.감시독방 등 세 종류가 있었다. 56개의 모범수 독방은 약 2평 규모에 다다미가 깔려 있고, 방마다 TV.양변기.세면대.간이책상이 있었다. 13평 규모의 공동 방(정원 6명)에는 TV.간이침대 2개가 있었지만 대부분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한 독방의 책꽂이에는 한국 월간잡지와 일한사전이 꽂혀 있었다. 30대의 한국인 수형자는 "한국과 달리 식품을 살 수는 없지만 건물.설비 시설이 넓고 방의 비품도 좋아 생활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감시 독방 수형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평일 오전 6시40분에 일어나 오후 9시에 잔다. 나카바야시 누리하루(中林憲春)교육부장은 "수형자들은 목공.금속 등 23종의 공장에 배치받아 하루 8시간 일하고 매달 평균 4천엔(약 4만4천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목공공장에선 초록색 옷에 모자를 쓴 수형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다른 작업장에선 한국인 이름 명찰을 단 수형자 서너명이 둘러서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구와마 소장은 "외국인이 전체의 16%인 2백46명"이라며 "21개국에서 왔는데, 중국인(1백12명)이 가장 많고 이란인 31명, 베트남 23명에다 한국인도 17명(재일동포 10여명 제외)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일본인들과 뒤섞여 생활한다.

운동장에선 야구 등 운동을 하고 있는 수형자 50여명이 있었다. 나카바야시 부장은 "모든 수형자들이 매주 운동 2~3차례, 목욕 두 차례를 한다"고 말했다. 체육관에는 가라오케 시설이 있고, 서예 글씨와 그림 등도 걸려 있었다. 교도관은 2백50여명. 수형자 중에는 폭력단원도 30%나 돼 하루 평균 4~5차례 폭력사태가 발생한다. 따라서 대부분 교도관들은 형무소 옆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전과 10범의 한 일본인은 "출감해도 사회가 받아주지 않아 역시 야쿠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또다시 수감되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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